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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NAME

내 이름은 CAZA

by CHRIS Jan 28. 2024

내 이름은 CAZA다. 포효하는 성질머리가 사자와 닮았다고 해서 불려진 이 애칭은 머릿속 냉정한 아니무스(ANIMUS)와 가슴속 열정적인 아니마(ANIMA) 사이에서 태어난 꼬마 사자에게 헌사하는 선물이기도 하다. CAZA의 탄생은 성공과 실패에 대한 진득한 고려보다는, 좋아하는 일을 꾸준하게 한다면 이 삶이 기쁘리라는 열망에서 시작되었다. 가벼운 붓질이 필사(必死)가 되어버려서 위가 살짝 부담스러운 요즘이지만 사람들이 "CAZA"를 자주 불러주었으면 좋겠다. 김춘수의 》처럼 하나의 몸짓이 특별한 이름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들은 현재 내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모두 그 무엇이 되고 싶지 않은가. 어릴 적 기억을 차지한 시구의 한 구절처럼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2013년, 너의 이름을 뭐라고 지을지 고민했다. 한순간 나의 머릿속을 사로잡은 너는 정말 아름다웠다. 이름을 너무 길게 지으면 오랫동안 장수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염원을 담아 불린 《김수한무》의 전래동화 속 주인공처럼, 위급한 순간에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타 워리워리 세브리깡 무두셀라 구름이 허리케인에 담벼락 담벼락에 서생원 서생원에 고양이 고양이엔 바둑이 바둑이는 돌돌이!" 이렇게 숨 막히게 부르다가 너의 인생이 허무하게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열정과 패기를 담아 짧고 강렬하게 불러보기로 했다. CAZA! 흡사 자궁에 품고 있던 황금빛 갈기의 영롱한 태몽처럼 의식의 한편을 감싸고 있던 너는 이미 저만치 등 푸른 초원으로 내달려가고 있었다.


"CAZA!"


[사자와 꽃, CAZA(LION) and FLOWER] 2013. 고숙영作 in CAZA DESIGN SHOWROOM[사자와 꽃, CAZA(LION) and FLOWER] 2013. 고숙영作 in CAZA DESIGN SHOWROOM


이름은 존재에게 다가가는 첫 부름이다. 가정을 벗어나 학창 시절을 거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누구 씨!", "O대표", "O팀장", "아무개", "저기요", "여기 봐요", "헤이", "얘", "야"까지 다양하게 불려봤다. 그러나 머리 뒤통수를 간지럽히는 호칭이 귓가를 한 바퀴 메아리칠 때마다 진정 이름이 무엇인지, 정말 저 사람이 나를 부르는 것인지, 이름 불려진 나는 누구인지, 이름과 나는 동일한 인물인지, 벗어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의문들이 백색의 소음과 뒤섞여 멍해지곤 했다.


이름은 중요하다. 작가들이 캐릭터를 만들고 대기 중인 피사체에게 생기를 부여할 때 방점을 찍는 순간이 바로 이름을 부를 때이지 않던가. 'A 남자', '2호 여자', '506호", '행인 3', '캐셔 1' 주인공까지는 아니더라도 존재감이 없다니 시시하고 재미없다.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가 지어준 꽃 이름으로 불렸으나 그다지 꽃에 감흥이 없던 나는 타인이 이름을 부를 때마다 알사탕을 음미하듯이 나의 이름을 입 안에서 돌돌 굴려보곤 했다. 그래선가 스스로와 매칭되지 않는 이름의 부조화가 사람들에게 쉽게 각인된다는 것도 알게 됐고, 타인을 매료하는 기억의 순간에는 부르기 쉬운 이름이 존재의 틀을 잡는 데는 도움이 된다는 것도 배웠다.


언젠가 내가 사랑했던 꽃은 머리를 아래로 숙이고 가볍게 시들 것이다. 그러나 너를 만났던 녹음 짙던 나무 아래 갓 구운 빵냄새를 풍기던 한 줄기 햇살과 콧속을 어지럽히던 부드러운 꽃향기와 눈앞에서 벚꽃처럼 흩날리던 풍성한 머리칼과 하회탈처럼 환하게 웃던 입매와 가벼운 미풍에도 길게 반짝이던 눈썹은 수 십 년을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형상으로 남아있겠지. 그렇게 너의 이름을 불러본다. CAZA.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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