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Look Back in Anger: Vacation of Memory] 2019. 5. 4. PHOTOGRAPH by CHRIS
"행복한 사람은 뒤돌아보지 않는다. 앞을 바라보지도 않고 다만 현재를 본다. 행복을 얻기 위해선 순간을 살아야 한다. 그러나 의미를, 꿈과 비밀과 인생에 대한 의미를 알고 싶다면 아무리 어둡더라도 과거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하며 불확실하더라도 미래를 위해 살아야 한다."
《살인의 해석, 제드 러벤펠드 The Interpretation of Murder, Jed Rubenfeld》
매일의 달콤한 행복을 얻는 것보다 진물 나도록 고통스럽더라도 진중한 삶의 의미를 알고 싶다. 어렸을 적 달을 보며 빌었던 꿈은 현실화되고 있다. 아플수록 살아있다는 느낌에 혈관이 짜릿하게 조여 온다. 세상의 비밀은 내 안에 응축되어 있다. 눈 감으면 원점으로 돌아가는 인생은 오늘도 그렇게 돌고 돈다. 영원한 무지(無知)를 향해 달려가는 순간 급격한 흥분을 가라앉히면 묻어두었던 어두운 욕망과 만나게 된다. 어제를 돌아보는 사람에게 어긋난 현상에 대한 더 이상의 효과적인 해석은 없을 것이며, 자신을 괴롭힌 삶에 대한 되물음은 과거에 숨겨둔 리비도와 맞닿아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하늘 위로 반짝이는 별은 진짜 별이 아니므로.
"내 동포 테베 사람들이여, 오이디푸스를 보라. 그는 뛰어난 머리로 유명한 수수께끼를 풀었다. 권좌에 올라 모든 권세 위에 올라선 사람이 되었다. 그의 위대함을 바라보며 누가 선망을 품지 않았으리오? 그러나 검은 바다 같은 공포가 그를 삼켜버렸다. 이제 우리가 지켜보며 마지막 날을 기다리니, 죽어서 마침내 고통에서 자유로워질 때까지는 그 누구도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불안, 알랭 드 보통 Status Anxiety, Alain de Botton》
2007. 9. 11. TUESDAY
행복한 지 되묻거나 행복에 대해 고민한다는 것은 행복하지 않다는 소리일 것이다. 마음이 괴롭고 답답한 시간엔 행복이란 단어가 와닿지 않았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를 매달고 있는 괴로움보다는 시원한 바람이나 따스한 햇살, 향긋한 수풀의 내음, 조용한 휴식의 그늘처럼 가볍고 소소한 순간의 감상이 주어진다면 하루를 몰아치며 시간에 쫓기는 듯한 기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격렬한 흥분과 격정, 쾌락처럼 지나친 감정의 응집과 행복의 모습은 양립되기 어려워 보인다. 간혹 그립던 단어와 환경이 주는 편안함이 스쳐 지나가면 이상적인 삶의 형태와 미래 지향적인 공간을 상상하곤 한다. 흡사 아이들의 밝은 웃음 속에서 흘러가버릴 듯한 빛나는 순간을 잡고 싶은 것처럼 말이다.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는지 알기 위해서 나부터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알아가는 순간의 자료 수집에 있어서 매일을 그려보고 적어가는 연습을 길게 했던 시절, 통감이 별로 없어서 굉장히 무디었던 나는 다치거나 힘들 때 아프다는 말을 하는 게 부끄러웠다. 며칠 전 친구와 어릴 적 경험과 목격에 대한 기억의 시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애가 그러는데 기억이란 한꺼번에 올라오는 거래. 어렸을 때 아이들이 불편한 장면과 불합리한 상황을 목격하고도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시간을 잊어버리는 건 아니라는 거지. 뜬금없이 성격이 올라오고 수긍하던 대상에 저항한다는 것이 이유 없는 반항은 아닌 듯했어. 상처라는 건 들이닥치는 순간엔 바로 표현되지 않을 수 있고, 그 누적된 기억들이 모이면 잊을 수 없는 한 덩어리의 경험이 한 인간의 아픔을 구성한다고 할까?"
친구의 말을 들으며 성장하는 아이들의 생각의 구조와 감정의 형성이, 표현의 수단을 상실한 사람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시간 상황을 지켜보고도 적절하게 내부를 묘사할 언어를 찾지 못하면 말문이 트일 때까지 자해의 행동이 극렬해질 수 있다. 내가 속 안을 분출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을 찾아 하루를 정리하려는 것도 모든 것을 품에 안고 가기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사라지거나 소실될 나 자신의 한 조각이라도 기억하고 싶은 보존에 대한 욕구와 흩어져가는 시간의 존재에 대한 상실감이 원인이라고 봐야 할 듯싶다.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글들을 쓰며 평소에 입에서 절대 나올 수 없는 무너지는 감정들 속에서 낯설어했고, 혼란한 현실을 벗어날 방법을 찾아 방황했나 보다. 삶을 토로할 곳이란 자신 밖에 더 있을까. 무덤덤하게 지나갔던 어느 날을 꺼내면서 앞으로 가야 할 날들을 그려 보았다. 감각을 깨우는 훈련은 시간을 손에 쥐는 방법을 알려준다. 처음에는 하나도 얻기 어렵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손에서 열 개의 감각을 쥐게 되고, 그 이후엔 눈과 귀와 촉감과 머리가 모두 움직이게 되면서 온몸이 살아있다는 경험을 얻게 된다. 그러나 온통 나에게 몰두하기란 분산되는 현대의 생활에선 좀처럼 쉽지 않다. 다시 시간의 수첩을 펼치며 급한 성질을 몰아내고 천천히 나에게로 몰입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안 쓰던 근육을 쓰면 뻐근해지고 통증이 다가오듯이 기억의 재활훈련은 동일한 적응을 필요로 한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어리석다고 한다. 누구는 오늘만이 가치 있다고 하고, 누구는 앞만 보고 가야 한다고 한다. 과거에만 매몰되어서 현재를 보지 못한다면 그것만큼 바보 같은 행동은 없을 것이다. 과거를 돌아보려고 하는 이유는 현재의 위치를 점검하고 내일로 나아가기 위해서이다. 누구도 모르게 밀봉해 두었던 기억들, 지난날 아파했던 것이 무엇인지 깡그리 잊어버렸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 인간의 내부를 살펴보면 저마다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밤하늘을 보며 삶에 대해 묻곤 했던 어린 날은 아직도 생생하게 펼쳐져 있다. 흩날리는 감정들을 갈무리해서 도미노처럼 무너지지 않고 차곡히 쌓을 수 있을까? 말없는 기억들이 흩어져가고 비극적인 장면들이 겹쳐지는 소리조차 지금 내가 여기에서 살아있다는 생경한 자각의 소름을 몰고 올 때면 잔뜩 준비했던 통렬한 고백조차 사라져 간다. 거칠었던 시간에 살아남은 지난날의 나에게 고마워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