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COMPLAINING

책거리

by CHRIS
[PORTRAIT OF A FAMILY, HUH JI YEON, 2022]


한국 작가들의 작품에 관심을 두려고 하지만 현실을 서술하는 비현실성에 주목하며 실망을 하곤 한다. 왜 비평가들이나 작가들이 말하는 생활 속의 서술이 많은 부분에서 진실되게 느껴지지 않을까. 소재 선택에서부터 글의 진행까지 내가 서구의 것들에만 찬동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흔히 ‘한국적인 것’이라 불려지는 두리뭉실한 마감과 지루한 듯하면서 연결성 없이 사건을 몰아가는 이야기 구조는, 현 작가들이 삶에 대한 관찰과 발견을 담아내기보다 독자의 구미에 맞게 자극적이고 칼로리 높은 단어를 사용해 자신의 상상의 섬에 떠오른 삶을 부실하게 끼워 맞추려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절박한 생에서 멀어진 채로 편히 다리를 뻗고서 글을 쓴다? 오늘 기류가 내일 어떻게 바뀔지 예측이 힘든 비정상적 현실의 중압감에 찌들면 불가능하지 않을까.


준비할 서류 때문에 밖에는 나갈 수 없고 며칠 동안 수전증을 일으킬 정도로 뛰는 심장을 참을 수 없어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 몇 권을 들추었다. 동시대 사람들의 생각을 읽고 그곳에서 위안을 얻어 마음을 다스리려 했는데 그저 잡다한 말들 속에서 눈살만 찌푸린 채로 내가 왜 이 책들을 읽으려고 했는지를 반문하고 말았다. 인간성에 대한 통찰! 물론 그것이 문장 속에 강하게 녹아 있더라도 현실에서 무력을 행사할 수 없는 자들에겐 거품의 현상에 그칠 것이다. 어찌 되었든 살아야 한다는 결정론적인 삶의 당위를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잘 교육된 말장난과 평이한 심사를 달래려는 언어의 유희에서 허우적거렸다. 차라리 비현실적인 상황을 들어 현실에서 발생하는 비린 물거품과 삶에서 불거진 고뇌를 설명했다면 우연한 접근에서 파생된 생의 우회성에 박수를 치면서 뜨겁게 놀라움을 표했을 것이다.


언젠가 한 문학비평가가 말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작품이 신파적으로 가는 단계는 지났습니다. 죽음과 사랑이 자주 깃들여진다는 것도 좋지만 그 기복이 심하면 평범하게 살아왔던 독자들은 작위적인 현실에 외면을 할 것입니다. 이제 생활에서 공감을 느낄 수 있는 작은 이야기가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입니다." 그 이야기에 일말은 수긍했지만 많은 부분에서는 배신감을 느끼고 말았다. 생활 속의 작은 이야기는 평화로울 때는 좋은 소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생에는 누가 만들었는지조차 추적이 불가능한, 무시무시하고 커다란 조류가 하룻밤 성처럼 급작스럽게 생성되고, 그 안에서 추악하게 변화하는 인간의 생욕이 거칠게 파도를 치며, 갑자기 불어온 고통에 갈 길을 몰라서 허무하게 목숨을 버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 않는가.


이해타산적이고 부패한 사람을 점점 더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아 눈뜨고서도 가위에 눌리고 있던 차에, 또다시 난데없이 배설물만 놓고 도망간 고약한 영감과의 갑작스러운 대면으로 인해 분노에 떨었는데 거기에 온몸이 갈고리로 바싹 긁히고 더러운 오물까지 뒤집어써서 배알이 뒤집어졌나 보다. 편하게 자라온 사람이 잘 차려진 상이 고깝다고 투정 부리는 생활적인 소설은 그만 읽어야겠다. 공감이 전혀 오지를 않는다. 이 급박한 와중에 떠오르는 따분한 심사보다 더 진부한 어조의 이야기에서 멀어져야겠다. 두꺼운 책이 가끔은 그것을 베고 자는 베개의 역할보다 못할 때가 있다. 오늘도 비참했던 하루에 대해 별로 쓸 말은 없고 토로하기조차 귀찮아 괜한 책거리를 부려본다.


2005. 3. 28. MONDAY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고 대상이 주는 신선함에 자극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 관심사를 바꾸고 다시 새로운 것에 집중하는 행동은 그것에 진심이 담겨 있다면 굉장한 에너지를 요구한다. 나는 하나의 방향을 향해 달려간다면 주위에 펼쳐진 풍경을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바라보면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편견 없는 시선으로 묵직하고 깊게 알아가고 싶다.

수많은 정보과 지식의 홍수 속에서 기호에 맞고 사고를 확장시킬 수 있는 글들을 골라내기란 여간 쉽지 않다. 아침에 몸을 풀면서 의식의 일부를 쌓아왔던 책장의 얼굴들과 마주한다. 다 읽어낸 것도 있고 반쯤 읽다만 것도 있고 읽고서 잊어버린 것도 있다. 이미 타인에게 주었던 것과 이사를 반복하면서 멀리 가져갈 수 없어 솎아낸 것들도 있다.

어렸을 적엔 글을 적는다는 행위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우물 속에 이야기가 가득 쌓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말들이 넘쳐흐를 때나 속을 풀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을 때는 담을 수 없는 것들을 적게 될 것이라고 막연히 여겼다. 당시엔 우물의 깊이는 측정하지 않았다. 그렇게 깊을 줄은 몰랐고 침체의 늪이 이렇게 무거울 줄은 알지 못했다.

참을 수 없을 때까지 상황을 기다렸다가 말하는 습관은 결정권자의 입장이 되어서도 여전하다. 버스 뒷자리에서 지하철 모퉁이에서 길을 걷다가 혹은 극적인 현실이 닥쳐오는 최악의 경우에서도 사람들과 사물들에 시선을 묶어두면 관찰된 풍경이 한 편의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새로운 공간 속에 익숙한 물건들을 배치하면서 얼마나 지속적으로 서술적 행위를 반복할 수 있을지 생각한다. 난 주어진 시간을 뒤로하고 걸어온 길을 이제 막 쓰기 시작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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