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공허함의 맨얼굴
최근 여러가지 일이 있었다.
무언가의 계기가 있어서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게 되었다.
일찍 일어날 수 있게 된 계기는 아침마다 느끼던 무력감과 불안감을 무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불안감, 무력감이라는 감정은 어느샌가 과거의 트라우마를 불러와 트라우마를 주었던 주체들을 정당화하는 과정, 그 정당화는 나를 부정하는 과정으로 이어져왔다. 나는 내가 옳은지 남이 옳은지, 이 모든게 내 잘못이었는지 남의 잘못이었는지를 따지기를 반복했다.
나에게는 이 사실여부가 너무나 중요했으니까, 그 결과에 나의 존엄과 가능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최근에 겪은 일로 인해 내가 진짜로 목표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깨닳았기 때문에, 그 목표에 방해되는 감정적인 생각들에 사로잡히지 않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내가 지금 유일하게 원하는것은...무언가에 의해 왜곡되어버린 인생의 전반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나를 왜곡시켰던 요소들은 전부 비워내고,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그만큼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게 준비를 해야하기 때문에 나는 불안과 무력감이 올라올때마다 지속적으로 나를 괴롭혔던 나의 "내부 심판"과정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나는 gpt의 도움을 받아 모든 과정을 객관화하면서 이것이 진짜로 가치나 정당성의 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경험속에서 학습된 사고방식일 뿐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승자와 패자의 효과.
승부의 문제가 아닌 것을 누군가는 승부의 문제로 끌고왔고, 그 누군가는 남과 싸우면 높은 확률로 이기는 사람이었고(사회적인 공격성이 강한 사람인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의 생존전략의 일부로서 불필요하게 패자가 된것 뿐이라고. 승부를 정당화하는 논리가 승자에 의해 학습된것 뿐이고, 그 결과는 미래 가능성의 축소.그리고 내가 아침마다 하고있는 "내부 심판" 과정은 학습된 논리에 의해 스스로의 가능성을 축소하고있는 과정이라는 결론을 냈다.
그럼 나는 이런걸 하고있으면 안된다.
나는 그렇게 무력감이 올라올때마다 떠올랐던 트라우마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하나하나 정리했다.
그 과정은 나의 보상심리와 방어기제를 떨궈내고 다시 보는 과정이었다. 왜냐면 내가 느꼈던 것들은 모두 정당하니까 굳이 남과의 갈등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내 가치가 떨어질까봐 걱정할 필요가 없는거다.
그러다보니 신기하게도 진짜로 오랜 습관처럼 나를 따라다녔던 과거에 대한 생각들이 하나 둘 사라졌다. (물론 이게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머릿속을 장악하고 있던 트라우마에 대한 생각이 사라지고 나니 아이러니하게도 무력감이 더욱 있는그대로 느껴지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무력감을 피하기 위해 더 강렬한 생각들을 떠올렸던걸지도 모른다.
이번 한 주 동안에도 내 머릿속에는 계속해서 같은 질문들이 반복되었다.
"나에게 어떤 수단이 있지? 나는 왜 아무 행동을 하지 않는거지?"
당장의 불안을 피하려면, 엄마를 안심시키려면, 나라는 자동차의 운전대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나는 무작정 버둥거려야하는게 맞는거다. 내가 막무가내로 팔다리를 휘두르고 있으면 아무도 나를 쉽게 위협하지 않을테니까.
하지만 왠지 지금은 그러면 안될거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내린 결론대로라면, 내 인생의 전반부는 왜곡된 결과물이고, 그 전반부의 인생에서 만들어진 행동패턴이나 사고방식도 그냥 망가진 결과물의 하나일 뿐인데
내가 경험하기를...세상은 그렇게 안전하지 않고, 그나마도 해가 갈수록 나에게 더 적대적일수도 있는데, 망가진 상태로 행동하면 그만큼 더 큰 위험에만 노출되지 않을까? 나는 지금 당장의 불안을 피하려다가 더 큰 상처만 입고 지금까지처럼 미래의 가능성을 축소시키기만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춥다.
몸도 약한데, 추울때 에너지를 소진하고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