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었던 그 여름의 물속

수영을 처음가서 한달동안의 이야기. 비교를 안하는 법에 대한 약간의 팁

by 코알코알
klara-kulikova-NEAuwc3GMf4-unsplash.jpg 언스플래시에서 가져온 그림. Klara Kulikova의 사진. 수영을 하며 자유로워진 내 모습과 닮았으면 해서 가져온 사진이다.

수영복이 두렵다. 정확히 말하자면, 수영복을 입고 사람들 사이에 선 내 몸이 두려웠다. 어른이 되고 내 몸은 점차 과체중이 되었다. 학창 시절 평균으로 여겨지는 체중을 유지하던 내가 살이 점점 찌던 것이다. 조현병 판정을 받고 복용한 약, 아빌리파이는 몸무게를 순식간에 늘렸다. 70 키로 후반이 넘게 되고 내 몸을 싫어하게 되었다. 배에는 살이 접히고, 다리에는 오래전 화상을 입어 생긴 흉터가 남아있다. 살이 늘어지며 생긴 하얀 튼살은 거울 앞에 설 때마다 눈에 밟혔다. 스판 재질로 되어 몸에 달라붙는 원피스 수영복은 허벅지에 튼살과 종아리에 화상흉터가 드러나는 옷이었다.


정신과 의사 선생님은 내게 말했다. “규칙적인 운동은 치료에 중요해요. 몸을 움직이면 생각도 달라질 수 있어요.” 나는 아빌리파이를 복용한다. 치료하기 위해 계속 먹고 있는 약은 식욕을 끌어올리고 체중을 증가시키는 부작용이 대표적이다. 몸이 무거워지자, 마음은 더 가라앉았다. 나는 나의 몸을 사랑하고 싶어 운동을 시작했다.


등산을 하고, 산책을 하고, 헬스를 하고, 피티를 끊었다. 하지만 어느 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실천은 어려웠다. 몸에 급격히 붙은 살은 나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게 했다. 그러다 우연히 수영에 대해서 접하게 되었다. 수영만 해도 한 달에 상당량을 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사소하기는 하지만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야겠지만 말이다.


운동을 시작할 때마다 품었던 희망은 번번히 좌절되었고, 나는 나 자신을 더욱 혐오하게 되었다. ‘역시 안 되나 보다’라는 생각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처음 수영을 등록하러 갈 때, 수영복을 살 때 한참을 망설였다. 이 수영복을 입고 사람들 앞에 나서도 괜찮을지 누군가 수군대지는 않을지 정말 공포스러웠다. 결국 가장 보수적인 디자인의 검은색 수영복을 골랐다. 내 흉터, 튼살, 경도 비만인 몸을 다 드러낼 수 있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첫 수업을 하고, 아무도 관심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로 사람들은 내게 관심이 없다. 심지어 내 몸은 물에 떴다. 난생처음 느낀 가벼움이었다. 오히려 나는 유선형의 몸이어서 물의 저항을 덜 받아 꽤 빨랐다.


첫 수영 강습에서는 물에 적응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물에서 음파를 하고 코로 내쉬는 것, 다리를 차며 물을 가르는 것 등 모든 것이 새로운 도전이었지만 모든 것이 즐거웠다. 물에서의 부력은 땅에 있을 때의 중력의 느낌과는 다르게 작용해서 즐거웠고, 물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수영을 시작하고 나서 삶에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물속에 있을 때는 잡생각이 없어진다. 호흡하기에도, 몸동작하기에도 바쁘다. 한 달이 지나고 체중도 4키로나 줄었다. 가장 놀라운 건 내가 내 몸에 대해 덜 미워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수영복을 입는 일이 편해진 건 아니지만, 예전처럼 부끄럽지는 않다.


이 몸이 나를 괴롭히는 대상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예전에는 몸을 볼 때 심미적인 것만 봤지만, 기능적인 부분을 보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통뼈에, 종아리에 근육이 붙은 다리가 싫었지만, 수영하고 나서는 튼튼하고 힘찬 다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조현병 환자이다. 지금도 약을 먹는다. 완전히 나은 것은 아니다. 어쩌면 나을 수 없는 병일지도 모른다. 주사를 맞고 있음에도 혹시나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현실적인 모든 문제도 내 곁에 있다. 하지만 물속에서는 하루에 몇 시간 정도는 나는 잠시 평범한 사람이 된다. 물속에서는 호흡하는 것 외에는 아무 생각도 없다. 일정한 호흡과 반복되는 움직임 속에 망상은 끼어들 틈이 없다. 물 밖에서는 내가 누군가에게 불편한 존재가 아닐지 불안하다. 물속에서는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그 시간만큼은 내가 병이 아니라 그냥 한 사람일 수 있어서 괜찮다고 느낀다. 그 시간만큼은 내가 진단명(조현병)이 아니라 존재가 된다.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낀다.


수영을 처음 등록했을 때, 같은 반에 등록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자신을 소개할 때, 한 달 안에 한강에서 수영하기를 목표로 한다고 소개했다. 자신은 크로스핏을 같이하고 있다고 하였다. 몸도 날씬하고 가벼워 보였다. 나와 똑같은 초보였지만, 킥력도 상당하고, 수영 자세도 잘 잡아 삼 주 만에 자유형을 킥판 없이 했다. 같은 출발선에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 사람은 빠르게 추월했고, 나는 여전히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비교는 아주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


비교가 시작되자 마음은 점점 조급해졌다. 해내야 한다,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럴수록 몸에 힘을 주게 되고 물에 가라앉았다. 수영 강사분은 상체 부분을 더 기울여야 한다고 했고 단순히 상체만 기울이는 게 아니라 고개도, 제일 중요한 귀와 뒤통수가 물에 잠겨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기본자세를 연습할 때 그분은 어떻게 했더라 하며 싫어도 계속 떠올리게 되었다.


왜 나는 안될까? 나는 이 운동에 잘 맞지 않은 사람인가 하는 자기 비하가 계속되었다. 어느 날, 자유형을 해보려 애쓰다 괜히 물을 마시고 기침만 연달아 하던 순간이 있었다. 강사님이 말했다.

“지금 누가 쫓아오는 게 아니니 편하게 하세요. 지금은 물에 익숙해지는 시기에요.”


강사님은 누가 쫓아오는 게 아니라고 했지만 내 자격지심은 나를 쫓아오고 있었다. 시작은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아니라 살을 빼고 싶다. 배우고 싶다였는데 지금 마음은 그 사람과 비교하며 잘하고 싶다는 마음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후로 나는 물속에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숨 쉬는 법도 팔 젓는 순서도 어설펐지만, 조금씩 자유형의 모습에 다가가고 있었다. 물속에서 느껴지는 작은 변화들, 물속에서 느껴지는 묘한 균형감. 그런 것들이 내가 나아지고 있다는 증거였고, 그 순간만큼은 그 사람에 대한 것은 잊으려고 노력했고 오로지 나에 집중하려 했다.


아마 수영은 누군가를 따라잡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물과 어울려 나를 알아가는 운동인지도 모른다. 어제보다 내가 편안하게 물에 떠 있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 같다.


지금의 나는 자유형을 킥판 없이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자유형을 완벽하게 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예전처럼 허우적대지는 않는다. 물에서 나만의 리듬을 찾는 시간이 쌓이고 있다. 나는 이제 그 사람과 나를 비교선상에 두지 않는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속도로, 나는 나의 속도로 물과 친해지는 중이다. 비교는 너무 쉽게 시작되지만, 그만두는 것은 연습이 필요하다. 수영은 나에게 그 연습을 시켜주는 시간이었다. 누군가보다 더 잘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비로소 나는 물속에서 평안을 얻었다. 그리고 어쩌면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같은 반, 같은 시기, 같은 나이, 같은 조건인 것은 결국 껍데기일지 모른다. 중요한 건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 어제보다 조금 더 편안해졌는지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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