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성희 Mar 03. 2022

배를 좋아하는 어떤 할머니



그 할머니를      

또 만났다.     

시장 골목을 지나가고 있었다.     

오늘도 역시나 과일가게 앞을      

기웃거리는 할머니.     

          

     

본인이 드시려는 걸까?     

자식을 주려는 걸까?     

세 번째 마주치니 궁금해진다.     

          

한 달 전쯤 과일가게에서 우연히      

마주친 할머니는 나를 기억 못 한다.     

          

그 과일 과게는 언제나 도떼기시장처럼      

시끄럽고 어수선한 분위기다.     

손님을 모으기 위해 소리를     

지르기 때문이다.     

     

장점은 싸고 가짓수가 많다.     

단점은 뭐하나 사서 계산하려면     

줄을 길게 서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줄 서서 기다리는 시간이 불편해서     

아주 가끔만 이용한다.      

아니면 늦은 밤이 되어 한산할 때      

우연히 지나가다     

사기도 한다.     

          

할머니를 처음 만난 그날은      

손님맞이 장을 보고 있었다.      

이것저것 살 게 많아 맘먹고      

장바구니를 가득 채웠다.     

     

한참이나 지루한 줄 서기를 한 후      

힘들게 계산을 하고 빠져나왔다.     

     

가게 입구에서 수레에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할머니가 나에게 말을 건넨다.     

"이거 배 두 개만 가져갈래요?"     

내가 가게에 도착했을 때 그 할머니를      

얼핏 본 게 생각났다.                

  




수북이 쌓아 놓은 배를 여태껏      

심혈을 기울여      

고르고 골랐나 보다.     

그 할머니 유모차에는 배 네 개가      

올려져 있었다.     

     

말끝이 분명하지 않아 정확하게      

알아듣지는 못했다.     

그냥 짐작으로 네 개가 많아서      

나누자는 뜻인가 보다 생각했다.     

"아 그래요. 할머니 두 개 주세요.      

4천 원 드리면 돼요?"      

가격표가 4개에 8천 원 써졌길래      

얼른 4천 원을 주고 돌아서려는데      

그게 아니란다.     

     

무어라 한참 설명을 하신다.

귀기울여 들어본 후에야 무슨 뜻인지 알았다.     

아직 계산을 하지 않았으니      

계산하고 올 동안 기다리라는 것이다.     

'아니 뭐야, 날더러 저 긴 줄이 없어질 때까지     

또 기다리라고?"     

갑자기 머리에서 김이 나는 것 같았다.      

그동안 시간 허비한 것도 아까운데      

도저히 그건 안 하고 싶었다.     

눈치빠른 할머니는 내가 말릴 틈도 없이

얼른 돌아섰다.

구부정 밀고 가던      

할머니 유모차에선 배 두 개가 데구르 굴러      

떨어졌다.     

'그냥 돈 돌려주세요'라고 말하기도 참      

애매한 상황이었다.     

     

나는 당연히 계산이 끝난 줄 착각했던 것이다.     

할머니가 들고 가기 무거워서 나에게      

나누자는 뜻으로 알았기에.     

     

이럴 거면 처음부터 배를 골라 한꺼번에     

계산하고 나왔을 것을.     

별로 필요하지도 않은 배를 억지로     

사고 있는 꼴이 묘했다.     

     

한참만에 다가온 할머니는 배 두 개를      

내밀며 무척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집에 돌아와서 보니     

배 두 개 모두      

한 귀퉁이가 어그러져 있었다.     

바닥에 내동댕이친 걸로      

알고 골라주신 것이다.     

     



순간 열을 받았지만     

이내 마음을 내려놓았다.      

얼마나 배가 먹고 싶으셨으면     

그렇게 하셨을까.     

묶음으로 네 개를 다 사기엔      

돈이 부담스러워서였을까?     

문득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유독 배를 좋아하셨던 엄마는     

긴 밤 요깃거리로 배를 깎아 드시곤 했다.     

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맛없는 배를 왜 먹는지 이해 못 했다.     

     

얄밉다 생각한 할머니지만,     

우리 엄마 모습이 겹쳐져      

뭔가 짠한 마음이 들었다.     

     

다음에 또 마주치면     

말을 걸어봐야겠다.      

배도 하나 사드리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웰다잉에 대해 생각해 볼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