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은 없다. 미루면 후회한다.
얼핏 팔십 후반쯤 되어 보였다.
길가에 떨고 있는 초라한 행색의 할머니.
누구를 먹여 살리려고 저리 억척을 떨며
과일을 파는 걸까.
논현역 근처,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가는데
꿋꿋하게 자리를 지킨다.
안 됐다는 마음에 자꾸 눈길이 갔다.
"밤 맛있어요. 새벽에 내가 직접 까 온 거요."
장사에 눈치가 빠른 분이었다.
"이거 좀 사주세요."
작은 소리라 못 들은 척 지나갈 수도 있었지만,
마대 포대로 발을 덮은 모습이 어른거렸다.
지하철 입구에서 다시 발길을 돌렸다.
"얼마예요?"
"만원이요. 진짜 좋은 밤이라요."
살펴볼 것도 없이 한 봉지 집어 들고 왔다.
그냥 먹기는 힘든 상태였다.
씻어서 다시 한 꺼풀 벗겨내느라 고역스러웠다.
벌레 먹고 상한 게 많아 부피도 반으로
줄었다.
그런데도 속아서 억울하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밤맛은 달았다.
그거로 충분했다.
자신의 몸 아랑곳하지 않고,
11월 찬 바닥에서 떨고 있는 그 할머니가
어찌 그리 짠하던지.
왜 돌아가신 엄마 얼굴이 오버랩되는 건지...
지난여름, 여느 때처럼 k에게 전화를 했다.
"뭐해? 시간 되면 점심 먹자"
"나 지금 시골 내려가고 있어요."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냥요. 엄마를 너무 오랫동안 못 봤더라고요.
언니 책 보고 많이 느꼈어요.
후회하지 않으려고 엄마한테 가는 거예요."
바빠서 하루도 쉴 틈이 없는 사람이 5일씩이나
휴가 내서 친정에 다니러 간다고 한다.
괜스레 가슴이 먹먹했다.
엄마를 살펴 줄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만도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지인이
한없이 부러웠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투병 7년 만에 돌아가신
우리 엄마.
요양병원에서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좀 더 잘해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겨울 찬바람처럼 파고든다.
*
후회하지 않기 위해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