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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성희 Feb 15. 2022

화장품 가게 앞에서




봄을 재촉하는 듯


사부작사부작 비가 내린다.


감기 증상이 있어 외출을 삼가다


답답하여 좀 걷기로 했다.




문득 발길이 멈춰지는 곳.


화장품 가게 앞이다.



딱히 화장품 살 일도 없으면서


또 서성이고 있다.





사실 난 화장하고 꽃단장하는 일엔


영 소질도 없고 게으르다.


부지런한 엄마를 왜 닮지 않았을까.








엄마는 늘 화장을 하셨다.


미인 소리 한번 못 들으셨을 것 같은


외모지만 나름 멋쟁이셨다.


'쥐 잡아먹었나, 입술 색이 그게 뭐야!'


아버지의 핀잔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 역시 립스틱 색이 너무 빨갛다고


엄마를 말린 적도 있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가끔 다투시는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아팠다.


아버지는 엄마에게 못생겼다는


표현을 함부로 하시곤 했다.


대장부 기질인 엄마이지만


여성이기에 상처가 됐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언제나 곱게 화장하고


머리 손질도 신경을 쓰셨던 것 같다.







팔십 대를 내내 요양병원에서


지내야만 했던 엄마.


왼쪽으로 마비가 와 반신불수인


상태였지만, 늘 단정하셨다.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하고


분단장하고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을


마주했다. 비록 환자지만,


초라한 모습 보이고 싶지


않으셨던 거다.


화장이라야 로션 하고 콤팩트 톡톡


두드리는 정도가 다였다.




그런데 같은 병실 쓰는 사람들이


그 꼴을 못 봐주었다.


'미친년, 미친 할망구'라고


못살게 굴어 병실을 여러 차례


옮기기도 했다.






"아야, 올 때 도화루 하나 사다 주거라."


엄마가 평생 쓰던 파운데이션이라는데


어디서 파는 건지 찾아내지 못했다.


그런 이름의 화장품이 존재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건 단종된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두레 생협에서 천연성분 콤팩트를


사다 드렸더니 만족해하셨다.


그런데 양이 너무 적어서 금방 닳았나 보다.


"미안해서 어쩐다냐, 다 썼는지 안 나온다."


콤팩트 분첩이 말라서 묻어 나오지


않는다고 하시면 사서 보내드렸다.




마지막 생신이 될 줄 꿈에도


몰랐던 그해.


" 보내지 말고 네가 직접 가져오너라."


기다릴 테니 부치지 말고 와서 주라며


고집을 부리셨다.


난 두 개를 사서 가방에 챙겨두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생신 때는 일이 바빠


내려갈 수 없었다.


그다음 주 가려던 것이 또 미루어졌다.


한 달 뒤 휴가 받아 가겠다고 약속드렸다.




그리곤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는 바람에


끝내 전해드리지 못했다.


망연자실, 무덤에 묻어드리려고 손에


들고 있던 걸 이모가 가져가셨다.




마지막 염할 때


수의 곱게 입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화장을


하고 떠나셨다.




다행이다.


아버지께 고운 모습


보여드릴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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