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세의 육기술 피아니스트, 인사동 산촌에서 연주하던

그리운 선생님의 발자취를 찾아서

by 정성희

93세의 육기술 피아니스트, 인사동 산촌에서 연주하던 그분을 찾아서_ kbs 6시 내 고향에서

한번 꼭 찾아뵈려 했다.


만나서 식사 한 끼 대접하고 싶었다.


그렇게 마음먹은 지가 작년 가을쯤.


지인과 식사할 일이 있을 땐 인사동에서 보자고 유도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렇게 미루다 지난달 드디어 그곳을 방문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선생님은 계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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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큰 길가에선 눈에 띄지 않는 곳이었다.


모나리자 산촌 표지판을 따라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막다른 길처럼 보였는데 가까이 가니 왼편으로 이어진 집이 보였다.


맨 끝에 그 식당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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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세의 연세에도 매일 인사동으로 출근을 했다는 육기술 선생님.


등이 좀 굽은 것 말고는 예전의 모습과 크게 달라지신 게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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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에서 볼 때는 육기술 선생님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내가 갔을 땐 떼어내고 없었다.


모나리자 산촌에서 흔적을 감췄듯


육기술 선생님은 이미 세상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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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세의 육기술 피아니스트, 인사동 산촌에서 연주하던 그분을 찾아서





입구에는 식당 대표인듯한 분이 피아노 연주하는 사진이 걸려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점심시간이라 이 분의 연주가 진행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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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기술 선생님은 인사동에 있는 모나리자 산촌이란 이곳 식당에서 마지막까지 일을 하셨다.



남들이 맛있게 밥 먹고 있을 때


정오에서 두 시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배경음악을 깔아주는 역할을 맡아하셨다 한다.


엉뚱한 궁금증이 스친다. 수고비는 얼마나 받으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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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세의 육기술 피아니스트, 인사동 산촌에서 연주하던 그분을 찾아서_ kbs 6시 내 고향에서




연주자는 마지막까지 피아노를 치다 죽는 게 행복한 거라고 말씀하시던 선생님,


떠나실 때 행복하셨을까?


마지막 날도 연주하기 위해 출근을 하셨다는 전설적인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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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매일 이렇게 연주하시느라 힘들지 않으세요?"


진행자의 질문에.


"안 하면 밥을 못 먹잖어."


밥 먹기 위해 연주해야 한다는 농담 같은 짧은 답변이 왜 그리 안쓰럽게 들리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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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 맛있는 밥 한 끼 대접할 기회를 놓치고


친구와 먹는 밥이 씁쓸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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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육기술선생님을 마지막으로 뵌 게 언제인지 정확하지는 않다.


아마 20여 년은 족히 되었을 것 같다.



30대에 선생께 재즈 피아노 반주법을 배웠다.


오로지 취미가 피아노였던 그 시절 어떻게 하면 자유자재로 연주할 수 있을까에만 빠져 지냈다.


개인교습과 종로 학원 등을 뻔질나게 들락거렸지만 실력은 나아지지 않았고 항상 결핍이 느껴졌다.


80년대 후반, 재즈라고 별다른 기법도 아니고 단순한 반주 형태라 식상하기만 했다.


그렇게 염증을 느낄 무렵 아는 언니가 육선생님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육기술 선생님은 서울대 음대를 나와 한동안 미국에서 살다 온 재즈 피아니스트라는 말을 덧붙였다.



악보에서 자주 보던 익숙한 이름이라 긴가민가 했는데 동일 인물이 맞았다.


당시 서점엘 가면 입구 쪽에 악보 피스가 유행처럼 진열되어 있었다.


한 곡씩 인쇄된 악보라 가격 부담 없이 골라 올 수 있어 좋았다.


악보 피스뿐 아니라 단행본으로 나온 육기술 편곡 책도 많았다.


가곡이든 팝송이든 가요든 어떤 곡이든 편곡 실력이 능수능란했고


직접 연주한 레코드 음반도 유명했다.


나 같은 사람이 만나볼 수도 없는 우러러 보이기까지 한 그런 분이었다.


얼마나 설레고 기대되었던지.



역삼역 3번(?) 출구 뒤편 골목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선생님 사는 동네가 나왔다.


그 집은 단독 주택을 개조한듯한 분위기였다.


낡은 철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한 뼘 정도 화단이 있고 사람 하나 지나다닐만한 마당이 세로로 나있었다.


각각의 현관문이 있는 걸 보아 서너 집 정도가 독립적으로 사는 형태였다.



육선생님은 그중 대문에서 첫 번째 집이었다.


도착할 시간에 맞춰 현관문을 열어 놓으신지는 몰라도 갈 때마다 열려 있었다.


신발 벗고 들어서면 조그만 화장실에 환풍기가 도는 게 보였다. 그 옆으로 주방 싱크대가 있었고 냉장고와 둥근 협탁이 놓였던 것 같다.




그리고 방 두 개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조금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안방 분위기는 단출했다. 침대와 모자가 걸려있는 스탠드 옷걸이가 언뜻 보였다. 낮이지만 불을 안 켜서 그런지 어둠침침하고 다른 사람 온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나란히 붙어있는 그 옆방이 레슨실이었다.


방문 오른쪽 벽에 피아노가 놓여있고, 머리 높이에 작은 창문이 하나 있었다.


반대편 벽 쪽엔 악보가 가득한 책장이 있고, 키보드와 여러 음악 장비 등이 있었던 것 같다.


벽지가 누렇게 변색된 영향인지 전체적인 분위기는 눅눅해 보였다.



"나도 한때는 잘 나갔지. 음반 사업도 하고.. 그런데 동업자가 배반을 한 바람에... 사기를 당한 후에 일어설 힘을 잃었지."



방의 나머지 공간엔 직사각형 유리 탁자를 사이에 둔 긴 소파와 간이 의자들이 빈틈을 메우고 있었다.


선생님은 허리를 굽혀 학생의 노트에 꼼꼼하게 악보를 그려가며 설명해 주었다.



육선생님은 거의 골초 수준이었다.


벽지가 변색된 건 아마 담배 연기가 한몫했을 것이다.


나는 담배 연기를 가장 싫어해서 현기증이 나고 괴로웠다.


어떤 땐 숨을 참느라 집중을 못 해 중요한 설명을 놓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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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세의 육기술 피아니스트, 인사동 산촌에서 연주하던 그분을 찾아서





음악을 접은 지도 오래다. 지금은 피아노도 없다.


그렇게도 애지중지하던 악보들, 클래식 전집 등. 거처할 집이 없어지고 모두 내다 버렸다.


라면 상자에 담을 정도의 소지품만 남겨두었는데 신기하게도 악보 책이 하나 남았다.


삶을 정리할 만큼 제정신도 아니었을 텐데 왜 이걸 갖고 있는지 나도 몰랐다.



무의식 중에 선생님께 돌려주어야 한다는 마음이 항상 남아 있었던 것 같다.



"아리랑 악보가 필요하다고? 가만있자, 내 민요 편곡집이 이거 하나 남았네. 갖고 가서 쓰고 다시 가져와."



그 당시 광주에 내려가 살 때였다. 나는 여러 사건이 생기면서 육선생님의 레슨은 끊기고 말았다.


2005년에 서울로 다시 올라와 가끔 안부 전화를 드리곤 했지만 민요 악보에 대해선 망각하고 있었다.



지금 있는 건 아마 복사본일 거다. 돌려드리려고 복사본을 인쇄해 놓은 기억이 어렴풋 난다.


그런데 정작 원본은 분실한 것 같다.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 모든 게 아스라하다.



살다가 문득 선생님 안부가 궁금했지만 전화번호가 바뀌어 알 수 없었다.


혹시나 해서 검색을 해보다 영상을 발견했다.


조카의 유튜브에 식당에서 연주하시는 모습이 올라와 있었다.


너무 반가워서 바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가야지 하면서 한 해 두 해가 지나버렸다.


그사이 선생님은 돌아가셨다.


작년 12월, 식당으로 출근하는 길에 넘어져서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인연은 언젠가 끝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늘 다음을 기약한다.


밥 한 끼 대접하고 싶다는 마음도, 악보를 돌려드리겠다는 다짐도,


또다시 ‘언젠가’로 미뤄둔 채로 시간 속에 흘려보냈다.



육기술 선생님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연주하러 출근하셨다.


그렇게 음악과 삶의 끈을 놓지 않으셨던 분.


나는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분이 내게 남긴 건 단지 악보 한 권이 아니라 살아있는 음악의 정신이었다는 것을.



지금 떠오른 얼굴이 있다면,


지금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미루지 말고 당장 찾아가자.


우리가 준비한 마음이 너무 늦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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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보니, 한마디 말에 무너질 때가 있었다저자정성희출판퍼플발매2025.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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