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줌의 삽질이 책이 될 때

산이 아니라 나를 옮기는 글쓰기

by 정성희




“책을 쓴다고요? 헤밍웨이처럼 쓸 건 아니잖아요.”


“한강 작가처럼 노벨상 받을 것도 아니면서 왜 그 고생을 해요?”


“그 시간에 유튜브나 하지, 요즘 누가 책을 읽어요?”


“한 권 만들자고 나무 몇 그루 베어지는 게 아깝지도 않아요?”


책 쓰기를 이야기하다가 친한 지인에게 직격탄을 맞았던 기억이 있다. 결과만 놓고 보면 그럴듯한 논리였다. 세상이 알아주지도 않고, 당장 통장에 찍히는 숫자가 되지도 않는다면 굳이 시작할 이유가 있느냐는 계산기 같은 말들. 냉소와 걱정이 뒤섞인 그 말을 들으며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때 깨달았다. 이건 말로 설득할 문제가 아니라 삶으로 증명해야 할 문제라는 것을.

그러나 삶은 결코 결과로만 굴러가지 않는다. 어쩌면 결과란, 치열하게 살아온 시간의 끝에 덧붙여지는 아주 작은 주석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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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공이산, 산이 아니라 '나'를 옮기는 일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흔히 “꾸준히 하면 결국 산도 옮길 수 있다”는 성취의 교훈으로 인용된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핵심은 산이 실제로 옮겨졌느냐에 있지 않다.

진짜 중요한 것은 매일 한 줌의 흙을 퍼 나르는 그 행위 자체다. 오늘도 삽을 들었다는 사실, 어제와 다름없이 다시 흙을 퍼 올렸다는 그 집요한 반복이 한 인간의 내면에 무엇을 남겼는가 하는 문제다. 남들 눈에는 미련한 짓처럼 보일 수 있다. 평생을 다 바쳐도 산은 여전히 그 자리에 요지부동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흙을 퍼 나르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분명한 결정체가 남는다.


‘나는 헛되이 살지 않았다’는 감각,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았다는 뿌듯한 확신.


그것은 온갖 불평과 체념으로 하루를 견디는 삶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시간이다. 정작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그 일을 대하는 태도이기에. 책을 쓰는 과정 역시 마찬가지다. 결과 이전에 삶의 방식과 내적 성장을 바꾸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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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의 방향을 '수익'에서 '밀도'로


책 쓰기를 권하면 열에 아홉은 효율부터 따진다.


얼마나 빨리 쓸 수 있는지, 출간으로 얼마나 벌 수 있는지, 인생이 단번에 바뀌는지 같은 질문들이다. 그 질문들 뒤에는 종종 이런 속내가 숨어 있다.


“지금 당신 삶도 별 볼 일 없는데, 무슨 글이냐”는 은근한 비아냥이다.

질문의 화살표가 오직 결과만을 향할 때, 글쓰기는 고통이 될 수밖에 없다.


문장이 조금만 막혀도 쉽게 포기하고, 책을 내고도 드라마틱한 변화가 없으면 그 시간을 미련 없이 실패로 규정해 버린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출간이라는 종착지가 아니다. 그곳을 향해 매일 문장을 밀어 올렸던 시간, 즉 하루하루 삽을 들었던 그 순간들이다.


글을 잘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늘도 ‘쓰는 사람’으로 살아냈다는 사실이다. 그 하루들이 겹겹이 쌓여 삶의 밀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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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담긴 문장은 마르지 않는다


의미와 가치를 말하는 것이 너무 이상주의적이라는 반론도 있을 것이다. 당장 팔리는 글의 노하우와 돈이 되는 비법이 더 급하다는 아우성도 들린다. 그러나 가치는 결코 현실과 동떨어진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지독하게 현실적인 전략이다.


내 문인 동료 K 씨는 7년째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는 62세 여성이다. 새벽 6시에 출근해 저녁 7시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온다. 몸은 늘 피곤하다. 그럼에도 그는 단 하루도 글쓰기를 놓지 않았다. 출근 전 30분에는 일기를 쓰고, 잠들기 전 한 시간에는 블로그에 하루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7년 동안 쌓인 글은 어느새 한 권의 원고가 되었다.


『꿈을 이루는 요양보호사』. 거창하지 않은 제목이었지만, 그 안에는 62년을 살아온 한 사람의 단단한 무게가 담겨 있었다.


책이 나온 뒤 삶이 극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다.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K 씨는 지금도 매일 아침 글을 쓴다. 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 책으로 천천히 이어가고 있다.


나는 그가 가끔 보내오는 문자를 읽으며 생각한다. 이 사람의 삶은 책 한 권 전후로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빛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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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리는 책의 비법은 기술에 있지 않다. 독자는 문장 너머에 남아 있는 삶의 흔적에 반응한다. 이른 아침부터 잠들기 전까지,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하루를 살아낸 사람의 문장에는 기품이 서린다. 누군가에게 작은 등불이 되기를 바라는 진심으로 쓴 글은 시공간을 넘어 반드시 가닿는다.


돈을 좇는 글은 금세 바닥을 드러내지만, 삶을 길어 올린 글은 오래도록 마르지 않는다.


글은 당당함의 기록이다. 자기 삶 앞에서 떳떳한 사람에게 사람도, 기회도, 자본도 자연스럽게 모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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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옮겨졌는지는 나중의 일이다


산이 옮겨졌는지는 나중의 일이다. 중요한 것은 오늘도 나는 삽을 들었고, 그로써 내 삶이 조금 더 고귀해졌다는 사실이다.

혹시 이 글을 읽으며 마음 한편이 조금 움직였다면, 그건 당신 안에도 이미 삽이 놓여 있다는 신호일지 모른다. 아직 대단한 이야기가 없어도 괜찮다. 지금은 한 문장 한 단락이면 충분하다.

나는 지금도 매일 쓰는 사람들과 함께 각자의 속도로 흙을 퍼 나르고 있다. 누군가는 혼자 쓰고, 누군가는 함께 쓰며, 누군가는 아직 첫 삽을 들까 말까 망설이고 있다.


만약 혼자서는 자꾸 멈추게 된다면, 누군가와 함께 이 과정을 나누고 싶다면, 혹은 “나는 과연 써도 되는 사람일까”라는 질문 앞에 서 있다면 그 질문을 안고 그대로 와도 된다.


산을 옮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늘, 딱 한 번 더 삽을 들기 위해서다.

그 한 번의 선택이 삶을 바꾸는 일은 생각보다 자주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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