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그림자
20:40 프리라이팅 시작. 오늘의 주제는 그림자.
그림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빛과 사물 또는 생명체가 필요하다. 강한 햇빛 아래서 그림자는 더 진해진다. 그렇다고 밤에 그림자를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공원에 산책을 나가면 가로등 불빛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발걸음을 옮기며 위치가 달라짐에 따라 그림자는 짧아졌다가 길어지기를 반복한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방의 천장에 달린 등 때문에 키보드 위에 내 머리의 그림자가 움직이고 있기도 하다.
어렸을 때는 핸드폰이 없었다. 그래서 사촌 동생들과 만나면 끝말잇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할머니댁 벽에 낙서하기(할머니댁에는 작은 방이 있었는데 허락의 여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우리가 어렸을 때 한 낙서가 가득했다.)와 같은 것들을 했다. 그 중에 하나가 그림자 놀이였다. 다 같은 어린이들이라 그리 대단한 그림자를 만들지는 못했다. 제일 만만한 건 양 손 엄지손가락만 겹치고 나머지 손가락은 쫙 펴서 만드는 나비였다. 나비보다 조금 더 고급 그림자는 엄지와 중지를 마주보게 잡고 나머지 손가락은 편 채 만드는 늑대였다. 다른 것도 더 있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내 기억 속에 존재하는 것은 이 두 개가 전부다. sns에서 온갖 재밌는 걸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요즘에 다시 생각해보면 그림자 놀이는 정말 간단하지만 쉽게 흥미를 잃을 것 같은 놀이이다.
거울을 보고 가위바위보를 하면 항상 거울 속의 나와 현실의 나는 같은 것을 낸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혹시나 다른 것을 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종종 가위바위보를 하곤 했다. 만약 실제로 다른 것을 낸다면 그 즉시 비명을 지르며 화장실을 뛰쳐나갔겠지만. 그림자도 마찬가지다. 어려운 포즈를 취했을 때 그림자가 따라하지 못하고 도망을 가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을 때가 어른이 되었을 때였던 것 같다.
요즘은 인스타그램에서 귀여운 그림자를 만드는 방법이 게시물로 올라오기도 한다. 고양이 그림자를 만들기 위해 땅 위에 쪼그려 앉은 채 손으로 열심히 꼬물꼬물 모양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어떤 릴스에서는 그렇게 고생해서 무언가 만들고 있는 청년을, 지나가던 아저씨 무리 중 한 분이 '고생이 많다'는 의미가 담긴 듯한 손길로 격려하고 지나가는 것을 보기도 했다. 4050의 눈에 2030의 놀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미워보이지도 않나 보다.
오늘은 시간에 쫓기는 프리라이팅이라 평소보다도 더 주제가 명확하지 않은 듯 하지만 그래도 올린다는 것에 의의를 두며 글을 마친다.
20:55 마침.
(타이머 10:51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