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주어진 과정을 한 계단씩 걸어서 가면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곤 취업해서 사원 대리 과장 차장 부장 임원까지의 계단이 있다. 우리는 평준화 세대여서 고교 때까지 입시란 게 따로 없었고 대학 진학 시에도 본고사 대신 과거 예비고사를 이름만 바꾼 '학력고사'를 통해 진학을 하였던 복 받은 세대이다. 또한 우리 땐 다행히 대학 진학 시 정원이 늘어나게 되어 재수하는 인원도 많이 줄었다. 우리 전 본고사 세 대 때엔 진학자가 전체의 절반에 불과하여 나머지 절반은 자동적으로 1년을 학원에서 보내게 되었다. 당시 학원에 갇혀서 재수를 했던 사람들은 수업 중간에 창문을 넘어 학원을 탈출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할 정도로 압박감과 고충도 장난이 아니었다. 우리 때 재수를 했던 한 친구의 말이 다른 친구들 대학 갈 때 도태되어 학원에 앉아 있다는 생각을 하면 처음엔 한마디로 아찔해진다고도 하였다.
시험을 봐서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친척 한 형은 당시 부산의 최고 명문고에 도전했다 고배를 마시고는 재수를 했는데 그 집 부친께서는 밥상에서 "우리 집 재수생 어짜노?"라는 말을 종종 하셨고 그럴 땐 비록 재수 중이었지만 집안에서 제일 똑똑했던 친척 형이 고개를 푹 숙이곤 하였다.
이렇듯 한 계단 한 계단을 올라가는 과정엔 제때 진학하는 사람과 한 계단 떨어지는 사람으로 희비가 교차한다. 내가 초등학교 때 평일에 동네 주변 삼류극장을 갔다가 나오면 옷에 담배 냄새가 배어서 애를 먹곤 하였다. 지금 곰곰이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극장에서 누군가가 계속 줄담배를 피웠던 모양인데 눈으로 확인은 못했지만 그 흡연자 중에는 암만해도 고등학교 못 간 재수생도 있었던 것 같다. 마음은 괴롭고 밖에서 대낮에 담배를 피우려니 보는 눈도 있어 제일 만만한 곳이 컴컴한 삼류극장이 아니었을까?
남들 진학할 때 자신은 그렇지 못하고 한 계단 떨어질 때의 얄궂은 심정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건 대학입시에만 해당되지 않고 대학원과 박사과정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대학원 석사과정도 재수생이 있고 박사과정도 마찬가지다. 박사과정 과목을 다 이수하고서 자격시험 혹은 논문이 통과하지 못할 경우 결국 박사학위를 받지 못하게 된다. 직장에서 단계별로 제때에 진급을 하지 못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은 이렇듯 경쟁 속에서 한 계단 떨어지는 경우가 수시로 발생하는 것이다.
나 자신은 대학까진 비교적 별 탈 없이 한 계단씩 올라갔지만 대학원에서 남들 2년 할 공부를 몇 년씩 더한 고약한 경험이 있다. 따라서 한 계단 떨어질 때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때 주변의 세상은 마치 자신을 비웃고 있는 듯했다.
그 늪과 같던 시간을 지금도 어디에선가 보내는 인생 후배가 있다면 술이라도 한잔 사주고 싶다.
괴테는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누구보다 앞서서 가는 사람도 앞으로 자신 앞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는 게 인생이다. 내 지인의 친구는 늘 1등을 하는 삶을 살아왔다. 전남의 명문고 졸업, S대 법대 졸업 후 사법고시 수석 합격. 그 지인과 통화하기 위해 유명 법무법인 변호사였던 그 친구에게 연락해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다시 그 지인에게 연락을 하려고 그 친구였던 변호사 전화번호를 찾으려 검색을 하는데 그는 이미 저 세상 사람이었던 것이었다. 이유인즉 변호사를 하다 어떤 회사 오너의 사위로 경영에 참여한 모양인데 주가 조작 혐의로 조사를 받다 차에 연탄을 켜놓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된 것이다.
고교시절 은사 한분은 "재학 시절 리더십도 뛰어나던 친구가 입시에 낙방하여 원서 쓰러 학교에 올 때 기가 푹 죽어 있는 경우를 보는데 그럴 때일수록 기죽지 말고 스스로 의기양양할 수 있어야 한다 "고 말씀하셨다.
살면서 한 계단 한 계단 내딛다가 남들이 앞으로 나아갈 때 뒤처지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창창한 인생을 도중에 접으려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땐 주변의 누구라도 우정 어린 한 마디를 해주면 어떨까? "인생의 진정한 승자는 마지막에 웃는 자야"라고, 또한 "인생엔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는 거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