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존재라는 결과는 사전에 원인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기본적으로 인간이란 생명은 남성과 여성의 결합에 기인한다. 하지만 자식을 낳은 부모는 생명 잉태를 위한 하나의 대행자이지 창조자라 할 순 없다. 그 근원이 그 이전 세상의 시작으로 거슬러 가게 된다. 자식과 부모의 관계와 관련해서 과거부터 '후레자식' 혹은 '호로세끼'란 말이 있다. 그 말은 부모가 없는 자식이란 말이다. 다시 말해 특정 남녀가 결합하여 생산만 한 자식인데 어찌 보면 짐승보다 별반 나을게 없다. 짐승들도 자기 세끼는 애지중지 먹여주고 키워주며 목숨을 걸고 지켜주는데 낳기만 하고 버린 생명은 그보다 나은 게 없다는 것이다.
70년대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란 유행가가 있었는데 사랑 때문에 눈물 , 즉 슬픔이 생겼다는 의미의 노래이다. 그 노래는 풍자적으로 불리어지기도 하였다. 다름 아닌 그 유명했던 '정인숙 사건'.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라는 가사를 개사하여 "아빠가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청와대의 미스터 정이라고 말하겠어요."라고 불렀던 것이다. 어쨌든 남과 여의 결합이란 원인으로 생기는 결과가 인간이란 존재이다. 물건이란 존재는 그 존재의 원인이 제조인데 그 제조의 원인은 그 물건의 필요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식으로 본다면 인간이 (생산되어) 존재하는데 존재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다.
장황하게 한 인간의 필요성을 논하기 전에 우리 인체를 구성하는 코털의 필요성을 보면 코털은 폐로 들어가는 좋지 못한 것들을 걸러 주기 위해 존재한다. 또한 뼈 사이에 붙어 있는 연골의 경우 뼈끼리 부딪칠 때 생기는 마찰을 줄여주기 위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 보잘것없는 것들을 포함해서 들판의 잡초까지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나름 필요성을 가지고 존재하는 것이지 필요성 자체가 없는 존재는 없다고 한다. 또한 생명이 없는 물건도 지구 상에 존재하는 실체로서 그 필요성 자체가 그 존재의 의미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불교에서는 옷 끝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하며 '인연설'로 존재나 현상을 설명한다. 어떤 하찮은 일도 원인이 없지 않다고 한다. '국화 옆에서'라는 시에서는 국화란 꽃이 피는 것을 소쩍새의 울음, 먹구름과 천둥 등 그 이전 자연의 현상을 가지고 설명하며 젊음의 혼돈과 방황의 과정을 거쳐 비로소 탄생하는 평온하고 원숙한 중년 여성 누님을 그려준다.
이러한 관점에서 나란 존재를 성찰해 본다. 나란 인간은 현재 비록 가진 재산이 나 사회적 지위가 대단하지 않다. 하지만 나름 평온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지낸다. 20대 때의 시행착오와 혼돈, 무모했던 도전의 모습들은 아직도 꿈속에서 마치 영화처럼 종종 나타나곤 한다. 사람들 중 시행착오나 시련의 과정을 전혀 겪지 않고 중년이 된 사람이 혹 있다고 한다면 그런 사람들은 '애늙은이'가 아닌 '늙은 애'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나름 정신적인 아픔을 통해 중년이 된 현재 나만이 가지고 있는 존재의 의미가 과연 있기는 한 건지 생각해 보는데 막막하기도 하고 당장 쉽게 떠오르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나름 존재의 의미라는 것을 그려본다. 만일 내가 돈이 많은 사람이라면 끝까지 돈을 더 벌려고 난리 칠지도 모르지만 다행히도 나는 그렇진 않다. 또한 만일 내가 정치인이라면 권력을 더 많이 좀 더 오래 가지기 위해 난리 칠 텐데 또한 다행히도 나는 그렇진 않다. 하지만 내가 한 인간으로서 진정할 수 있는 것, 아니해야 할 것도 없진 않아 보인다.
그중 하나가 내가 젊어서 잘 이해하지 못했던 삶의 중요한 원칙, 즉 '원인과 결과의 법칙'을 젊은이들에게 깨우쳐 주는 것 아닐까?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처럼 과거 후진국이던 대한민국이 세계10위권 선진국 반열에 오른 건 목숨을 던져 국가와 민족을 지키고 피땀 흘려 일했던 선배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질적 풍요라는 것은 그 이전 배고픔과 땀냄새를 기억하지 못할 때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과거 로마의 몰락에서 우리는 그 사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이 잘 났다는 사람은 현재 자신을 있게 한 조연들과 스태프들의 노고를 지극히 간단하게 생각하는 누를 범할 수도 있다. '원인과 결과' 또한 그로 인해 파생되는 '존재의 의미'를 깊이 깨닫는 사람들이 많을 때 혼자만이 아니라 함께 잘 사는 세상이 되도록 노력하는 사람도 많아지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