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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위한 기도

by 최봉기

인간은 짐승처럼 먹고 자고 배설도 하지만 다른 것 중 하나가 말을 한다는 것이다. 짐승도 체계화된 언어는 아니지만 소리를 통한 의사소통 수단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은 언어를 통해 감정과 의사를 정교하게 표현하며 말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한다. 말은 글과 비교해 즉흥적이므로 신중하지 않고 기분대로 내뱉을 경우 간혹 상대방에게 불쾌감이나 때로는 충격을 주기도 한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란 말이 있다. 조선시대 때 한 냥은 현재 5만 원 정도 가치라는 내용을 접한 적이 있다. 말 한마디로 잘하면 5천만원 정도의 빚을 탕감받을 수도 있단 말이다. 그만큼 말의 힘은 대단하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하지만 말도 마음을 대변한다. 말이 거친 것은 마음이 안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고유한 말버릇이 있다. 그건 개인의 성품과도 관련은 있다. 말할 때마다 말투가 투박하거나 과격할 경우 자신은 말할 것도 없이 상대방까지 불안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남이 화를 내거나 괴로워할 때 진정시키거나 위로해주는 말은 그 자체가 치료이다.


감정을 배제하지 않고 마구 퍼붓는 말이 보다 강한 힘을 발휘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정제되지 않은 말은 상대방에겐 총탄이나 포탄이 되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기에 조심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말을 할 경우 포근한 솜이불이나 향긋한 와인과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지나간 일이지만 지금은 고인이 된 어느 대통령이 어떤 특정인에 대해 직설적인 말로 짱돌을 던졌는데 그 말을 들은 당사자는 가슴에 대못이 박혀 곧장 차를 몰고 한강 다리로 가서 차를 세운 체 강물에 투신해버린 적이 있었다. 말 한마디가 총탄이 되어 한 사람의 심장을 바로 관통한 것이다.


일부러 말을 하지 않고 며칠만이라도 벙어리처럼 살 수 있다면 약간 답답할진 모르지만 마음은 평화로울 수 있으리라 본다. 최소한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좋건 싫건 매일 말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이다. 대학 때 어느 행사에서 한 여대생이 낭송했던 말과 관련한 시가 떠오른다. 그 시를 음미할 때마다 인간이 사용하는 말의 미학을 가슴 깊이 느끼게 된다. 그 시를 낭송했던 여성은 현재 서울의 한 명문대학에서 정치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말을 위한 기도

이해인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수없이 뿌려놓은 말들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었을까

조용히 헤아려 볼 때가 있습니다.


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두렵습니다.


더러는 허공으로 사라지고

더러는 다른 이의 가슴속에서

좋은 열매를 또는 언짢은 열매를

맺기도 했을 언어의 나무


주여,

내가 지닌 언어의 나무에도

멀고 가까운 이웃들이 주고 간

크고 작은 말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습니다.


둥근 것 모난 것

어두운 것 밝은 것

향기로운 것 반짝이는 것

그 주인의 얼굴은 잊었어도

말은 죽지 않고 살아서

나와 함께 머뭅니다.


살아 있는 동안 내가 할 말은

많은 것도 같고 적은 것도 같고

그러나 말이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없는 세상살이


매일매일 돌처럼 차고 단단한 결심을 해도

슬기로운 말의 주인이 되기는

얼마나 어려운지


날마다 내가 말을 하고 살도록 허락하신 주여

하나의 말을 잘 탄생시키기 위하여

먼저 잘 침묵하는 지혜를 깨우치게 하소서


헤프지 않으면서 풍부하고

경박하지 않으면서 유쾌하고

과장하지 않으면서 품위 있는

한마디의 말을 위해

때로는 진통 겪는 어둠의 순간을

이겨내게 하소서


참으로 아름다운 언어의 집을 짓기 위해

언제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도를 닦는 마음으로 기도하게 하소서


언제나 진실하고

언제나 때에 맞고

언제나 책임 있는 말을

갈고닦게 하소서


내가 이웃에게 말을 할 때에는

하찮은 농담이라도

함부로 지껄이지 않게 도와주시어

좀 더 겸허하게

좀 더 인내롭게

좀 더 분별 있는

사랑의 말을 하게 하소서


내가 어려서부터 말로 저지른 모든 잘못

특히 사랑을 거스른 비방과 오해의 말들을

경솔한 속단과 편견과

위선의 말들을 용서하소서


나날이 새로운 마음, 깨어있는 마음

그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내 언어의 집을 짓게 하시어

해처럼 환히 빛나는 삶을

노래처럼 즐거운 삶을

당신의 은총 속에 이어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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