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세상이 움추려들고 기진맥진해진 현재의
상황에서 우리의 정신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정신적 지도자에 대해 말하려 한다. 손봉호 교수와, 김준엽 전고대 총장이 그들이다.
손봉호 교수(1938년생)는 과거 서울대 등에서 철학 강의를 해왔던 대한민국의 대표적 실천적 지식인이다. 현재 고신대 석좌교수로 있으며 개신교의 개혁과 한국 사회의 참된 발전을 위해 누구보다 앞장서 왔던 인물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대학 때 그의 책 "윗 물은 더러워도"를 읽은 바 있다. 그 책에서 자신은 고교시절 자신의 모교인 경주고에서 당시 교장이었던 청마 유치환에게 "윗 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라는 말을 가감없이 내뱉다가 야단을 맞았던 적도 있었다는 것을 언급했다. 그 후 여전히 윗물이 맑지 못한 현재 "윗 물은 더러워도 아랫 물은 맑아야 한다"는 말을 하며 젊은이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내가 특별히 그를 존경하는 것은 그가 보여준 실천의 모습 때문이다. 그는 키가 157cm로 군면제 대상이었다. 군에 징집되려면 키가 158cm 이상이어야 하지만 그는 자진해서 입대한 사람이다. 요즈음 정치인들 중에서는 이런저런 사유로 군을 기피한 인물들이 있다. 어떤 인간은 담마진 (두드럼증의 일종)으로 군면제를 받아 사법고시를 통과한 후 총리까지 역임하기도 하였다.
손봉호 교수는 개신교 목사들에겐 대표적인 기피인물로 통한다. 그는 개신교 개혁에 오랫동안 중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한참 전부터 교회가 '돈'이란 우상을 숭배한다는 문제를 제기하였고 근래에는 목사직의 세습 금지, 목사의 근로소득세 납부 등을 부르짖었으며 최근엔 전광훈 목사와 같은 종교의 정치세력화를 신랄하게 비난한다.
학문이 본업인 교수들이 사회적인 활동 혹은 발언을 하는 경우가 꽤 있긴 하고 그러다 국회의원도 되고 장관이나 총리가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폴리페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문이 현실과 관련을 맺지만 자기가 유리할 땐 학문을 팔아먹고 불리한 경우가 되면 교묘하게 말을 바꿔버리는 일이 자주 발생하는데 국민을 기만하는 일이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손봉호 교수는 스스로 자신의 재산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서약을 한 사람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하여 돈과 명예를 걸머진 사람들 가운데 과연 자신의 부를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눠준 이들이 몇이나 될까? 우리나라에서 사업가 중 자신의 부를 사회에 환원했던 사람은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이 유일하다. 이병철, 정주영, 최종현 등 대한민국의 거부들은 자신의 자식들에게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세습이나 했을 뿐 일부러도 사회에 환원했다는 얘길 들어보지 못했다.
다음은 전 고려대 총장을 역임했던 김준엽이다. 내가 그에 관해 알게 된 것은 자신이 집필한 '장정'이란 책을 통해서이다. 일제하에서 일본 게이오대에 유학했던 그는 일본의 학병으로 중국 전선에 갔다가 목숨을 걸고 탈영하여 장준하 등과 함께 중경의 임시정부까지 6천 리 장정길을 나선다. 중경에서 미국 CIA의 지휘 하에 OSS대원으로 특수 군사훈련을 받은 후 주요 임무를 안고 국내 투입을 눈앞에 두었을 때 아쉽게도 해방이 되며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다.
그 후 고려대 교수와 고려대 아세아문제 연구소장을 거쳐 총장이 되었는데 강직한 인품으로 당시 5 공화국에 비협조적인 교육자로 총장직 사퇴 압력을 받고 총장에서 물러났다. 그가 사퇴하던 날 학생들이 그의 뒤를 따라가며 무리를 지어 독립군가를 불러주기도 하였다.
그는 3 공화국과 6 공화국 때에 장관과 총리 제안을 각각 받았지만 정치에 참여하지 않았다. 새해에 인사를 갔다는 친구의 말에 의하면 교수라는 사람이 정치권에서 부른다고 학교를 떠나는 것은 보기 좋은 일이 아니라며 끝까지 학교를 지키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6 공화국에서 헌법 개정 작업을 할 때 그는 이종찬 의원을 직접 만나 헌법 전문에 3 공화국 때부터 빠져있던 대한민국 헌법에 '임시정부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문구를 삽입해 달라는 당부를 하였다. 이승만 정부 때에는 헌법에 삼일운동과 임시정부의 정신을 계승한다고 되어있었는데 박정희 정부 때부터 '임시정부의 정신'이란 문구가 빠진 것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손봉호 교수와 김준엽 전 총장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분들이지만 이분들 외에도 존경할만한 많은 분들이 계신다. 유명인사가 아닐지언정 내가 중학교 때 전교생 포함 졸업생들까지도 존경했던 스승들이 계셨고 고등학교 때에도 그런 분들이 계셨다. 그분들은 이리도 무질서하고 이기적인 현재의 우리 사회에 있어 그 존재감이 정말 크고도 소중한 분들이었다. 눈앞의 이익만 챙기거나 자신만 돌보지 않고 큰 뜻을 가슴에 품고 주변 많은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이분들이 계셨기에 우리 사회가 그나마 이 정도라도 유지되지 않나 싶어 진다. 이러한 분들께 두 손 모아 가슴 깊이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