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쉰을 지나 예순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과거 10대 때부터 현재까지 삶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꼽으라 하면 나는 주저 없이 20대를 꼽을 것이다. 웃긴 얘기지만 나의 사주를 보면 음양오행 즉 수목화토금 중 나는 '목'에 해당하는데 20대 때 목, 즉 나무에 물이 부족했다고 나온다. 나는 지금까지 사주나 팔자 궁합 등은 비과학적이라 생각하며 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지냈는데 나의 20대가 워낙 정신적으로 힘들었기에 엉뚱하게도 사주팔자에 새삼스레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남자들은 20대 때 정신적인 방황, 군입대, 진로 결정, 연애와 결혼 등 산적한 현실적인 문제 속에서 마음 편할 일이 없다. 또한 일이 잘 되지 않아 괴로워하거나 실의에 빠지는 젊은이들이 있다. 친구의 친구인 김난도 교수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에서 '인생 시간표'라는 걸 제시하기도 하였다. 인생의 시계로 볼 때 인제 겨우 잠에서 일어나 일하러 나갈 시간에 해당하는 20대 초중반 젊은이가 아직 일을 시작도 해보지 않고서 자신의 미래를 비관 시 하는 것을 그는 난센스라고 말한다.
20대 때는 딱히 이루어 놓은 것도 없어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더라도 결혼 얘길 꺼내기가 쉽지도 않다. 굳이 내세울 게 있다면 '정의감', '젊음의 패기'와 때 묻지 않은 '순수함' 정도. 젊음의 에너지는 치솟지만 돌아서면 공허함이 찾아오기 일쑤. 하지만 누구나 거기서 출발해서 취업하여 안정도 찾고 사업을 하여 돈도 벌고, 고시 등을 통해 사회적 지위도 상승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특정 재주가 뛰어난 한 친구는 어떤 여자를 처음 볼 때 주변 친구들에게 하는 말이 있었다. 저건 한 달, 저건 3개월, 저건 6개월, 저건 1년 등. 그 기간은 깊은 관계에 골인할 시간이었다는데 놀랍게도 그 적중률이 거의 100% 수준. 여자만 만나면 쉽게 연애에 성공하여 몇 번 데리고 놀다 다른 여자로 갈아타는 인스턴트형 플레이보이형 젊은이는 인생에서도 성공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청춘사업이라는 연애도 어느 정도는 은근과 끈기를 필요로 하는데 하물며 인생은 두말할 나위 조차 없다.
대학교 마지막 학기 때 교수 한분은 졸업을 앞둔 우리에게 강의 중에 "인생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은 머리가 좋은 사람들일 것 같지만 실은 한 가지 일을 성실한 자세로 꾸준히 해온 사람들입니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때는 사실 그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 나이가 되니 수긍이 가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주로 머리가 좋은 사람은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기보단 유행 등에 민감하고 시류를 쫓다 보니 어쩌다 대박의 기회를 잡으면 몰라도 시간이 흘러도 성공의 길로 가기보단 제자리걸음인 경우가 있다. 반면 한 분야에서 초지일관 곁눈질하지 않고 달려온 사람들은 시간이 갈수록 하는 일에서 성과도 나오고 인정도 받게 되어 성공하게 될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통으로 인생을 놓고 볼 때 이십 대는 고행의 과정이라 보아도 될까? 성인이긴 하지만 아직은 예비 성인이고 늘 갑갑한 현실 속에서 부대끼게 된다. 게다가 남자는 우선 걸리는 문제가 병역.
그 병역 때문에 서로 사귀던 청춘 남녀가 중간에 헤어지는 경우도 한둘이 아니다. 나는 대학부터 대학원 시절까지도 나더러 '학생'이라 부르는 것을 몹시 싫어하였다. 또한 나는 지금도 대학생들에게 '학생'이란 호칭을 되도록 쓰지 않으려 한다. 왜냐하면 대개 '학생'이란 호칭을 사용하는 경우 권위적인 뉘앙스를 가진다. 즉 너희들은 아직 독립 안된 사람들이고 아직 갈길이 까마득하다는 얘기이다. 솔직히 말해서 자신들은 대학 문턱도 가보지 못한 사람들 혹은 학교 때 별 볼 일 없던 사람들이 '학생', '학생' 하면서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다.
현재 남들이 부러워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 즉 대학교수, 전문직 포함 국회의원과 고위 관료들. 이들의 20대 때 모습은 어땠을까? 이들은 똑같이 위에서 언급한 고행의 과정을 걸어왔다. 고시에 학문에 전문지식에 목숨을 걸었고 그 시절엔 환한 미래의 빛이 보이지도 않는 터널을 묵묵히 통과하고 있었다. 경제가 고도성장을 하던 과거에 비해 미래의 비전과 성공 가능성이 제한된 현재 상황에서 미래를 개척해야 하는 우리 자녀세대의 청년들을 지켜볼 때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다만 향후 희망적인 일들이 많길 기원하며 묵묵히 또한 변치 않는 맘으로 소신 있게 자신들의 인생을 개척하라는 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