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영과 콘도여행

by 최봉기

내가 어린 시절이던 70년대 초엔 콘도란 야외 숙박시설은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 그 시절엔 하류층은 여행이란 걸 갈 엄두도 내지 못했고 상류 정도는 되어야 여름철에 피서라도 갔다 올 수 있었다. 해외여행은 극소수의 사람들만 갔는데 가져갈 수 있는 돈이 최대 500달러였고 부부 동반한 해외여행은 갈 수가 없었다.


중학생이 되어 생애 처음으로 여름에 보이스카웃 캠핑을 갔는데 바다 주변 야영장에 전원이 텐트를 치고 야영을 했다. 첫날 저녁식사를 한 후 숲 속의 야영장 내 그림처럼 펼쳐진 텐트에서 이 친구 저 친구 옹기종기 앉아 얘기 나누며 쉬고 있는 모습을 보며 텐트 사이를 걸을 때는 마치 저세상에라도 와있는 듯한 환상적인 기분이었다. 집 떠나 친구들과 처음 자연 속에서 보내는 시간이었기에 그러하였던 것 같다.


하지만 그 기분도 잠시였다. 하루를 자고 나니 비가 쏟아져 텐트 안을 덮쳤고 옷과 신발이 모두 젖었다. 그때부터 "집 떠나면 고생"이란 말이 입에서 절로 나왔고 집으로 돌아가자 가족들은 나의 행색을 보고 까무러쳤다. 온몸에 흙이 묻어있는 꾀 제제한 몰골이 마치 물에 빠졌다 건져 올린 생쥐처럼 가관이었다.


대학 때는 여행을 떠나면 텐트를 가져가서 야영하거나 민박집에서 며칠 머물렀는데 가져간 코펠로 밥을 하고 꽁치통조림으로 찌개 하나 끓여서 식사를 했다. 젊을 때니까 젊음의 혈기 하나만으로 뭐든 했지만 지금은 무더위에 차도 없이 걷고 땀 흘리며 생고생하는 여행은 돈을 줘도 못할 것 같다. 게다가 고급 운동화를 텐트 밖에 두고 자고 일어나면 시골의 주변에 사는 애들이 훔쳐가는 일도 있어 돌아올 때엔 슬리퍼 차림이 되기도 했다.


후 시간이 흘러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자 콘도가 보편화되어 휴양지에서 마치 집처럼 편안하고 안락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대학시절 겨울방학 때 서클에서 설악산에 MT를 가서 묵었던 대형여관은 온돌로 실내 공기가 따뜻하지 못했고 수세식 화장실이 꽁꽁 얼어붙어 물이 나오지 않아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그때 몇 명의 여자들이 부르주아 선배 한 명이 갖고 있던 콘도에 가서 샤워를 하고 돌아왔는데 갑자기 향기로운 냄새와 함께 얼굴이나 머리에 윤기가 흐르며 마치 선진국에서 온 사람처럼 느껴졌다.


도심지에 갇혀 다람쥐 쳇바퀴 생활을 하다 야외 콘도로 떠날 때에는 먼저 만들어 먹을 음식의 재료를 구입하는데 단골 식자재가 삼겹살, 상추, 깻잎, 마늘, 양념장에 맥주와 소주이다. 야외라 마음이 홀가분하여 집에서 먹을 때보다 맛도 좋고 술도 훨씬 잘 들어간다.


지금까지 중학교와 대학 시절의 야영과 성인이 되어 경험했던 콘도 여행에 대한 추억을 스케치해 보았다. 이제 예순을 앞둔 나이에 얼마 전 아들이 내 생일 선물로 뭘 원하는지 묻길래 문득 침낭과 텐트에 까는 메트를 사달라고 했다.


지금은 차에 텐트와 캠핑 도구를 싣고 전국 방방곡곡 어느 야영장이라도 가서 바다나 숲에서 먹고 마시며 밤의 낭만을 만끽할 수 있다. 고급 호텔이나 펜션보다 다소 불편할지는 모르나 더욱 정겹고 마음속 깊이 추억을 간직할 여행을 떠나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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