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부친의 인생역정

반공포로 출신 약사

by 최봉기

몇 년 전에 국제시장'이란 영화가 상영되었다. 한국전쟁, 독일 간호사 광부 파견, 월남전, 이산가족 찾기 등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가슴 졸이던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이 영화화되며 지나간 시절의 애환을 느끼게 해주기도 하였다.


나는 주로 초등학교 때 부친과 함께 명절 전엔 빠짐없이 국제시장을 들러 명절빔을 사곤 하였다. 그때 옷 가격을 놓고 흥정하던 것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어린 마음에 내가 직접 옷을 산다면 저 정도로 능걸맞게 흥정을 해낼 수 있을까? 하고 자문해 보기도 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옷을 팔던 20대 정도의 점원들도 또순이로 그 바닥에선 닳고 닳아 어리숙한 사람 바가지 씌우는 거라면 명수들이었던 반면 우리 부친도 그 사람들과 비교하여도 물건값 깎는 데 있어서는 한치 뒤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국제시장은 한국전쟁 이전부터 있었겠지만 전쟁 때 피란민들이 몰려들고 그 피란민들 중 일부는 밑바닥 일을 하며 밑천을 마련하여 장사를 했던 곳이라 생각된다. 지금 국제시장 매점의 주인들은 경상도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지만 이들 상당수는 부모가 이북에서 피란 온 사람들 자식들이라고 한다.


우리 부친은 고향이 함경남도의 북청군 옆 이원군 남송면 출신이다. 한국동란 발발 시 38선 이북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군에 입대하였는데 6개월 후에 한국전쟁이 터졌고 전력이 월등했던 인민군이 낙동강 이남을 제외한 전 지역을 불과 3개월 만에 손에 넣게 되었다. 그리곤 낙동강에서 마지막 사투를 벌이던 중 인천 상륙작전으로 서울이 수복되며 인민군들은 후퇴를 하게 되었고 부친은 그 와중에 강원도 정선에서 비행기 폭격을 받고 소속 부대를 이탈하여 결국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3년 반의 반공포로 생활을 하게 되셨다.


포로수용소에 있는 동안 민간인 관리인의 도움으로 피란 내려온 할아버지와 삼촌을 만나게 되어 휴전 후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피란 내려온 가족들과 부산에서 생활하게 되셨다. 그나마 가족의 도움이 있었기에 휴전 후 악착같이 공부하여 대학에 입학, 약사가 되셨다. 부친은 포로수용소에 있을 때 신장염을 앓게 되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항생제의 경우 필요 분보다 더 확보하여 일부 복용하고 나머지는 외부에 팔아 현금을 마련했다고 한다. 그 현금으로 책을 구입하여 포로수용소안에서 틈틈이 공부를 했다고 한다.


당시 상황을 비교적 간단히 요약정리했지만 행간에 감춰져 있는 땀과 피로 얼룩진 인고의 시간을 어찌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부친은 어찌 보면 운도 꽤 좋은 분이었다. 포병이었기에 보병에 총 맞을 일이 적었고 남쪽에서 가족이라도 만날 수 있었기에 도움을 받아 대학에 진학하여 제대로 된 직업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모르긴 하여도 반공포로였던 사람 중에서 변변한 직업을 가진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개 막일을 하며 하루 벌어 겨우 먹고 지내는 정도가 대부분.


대학에서 공부를 하면서도 가정교사 생활을 했는데 대개 학교에서 점심을 먹을 정도의 여유가 없었고 허기진 배로 오후에 가정교사하러 간 집에서 주는 저녁을 먹고 나면 잠이 쏟아졌다고 한다. 그 후 졸업하여 월급을 받는 관리약사를 하게 되었고 그 후 개업하여 구순까지 60여 년 약사 생활을 하다 올해 건강상 이유로 폐업을 하셨다. 어릴 적 우리 집은 비교적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지만 근검절약을 생활화하며 늘 구두쇠 생활을 해왔다.


나는 지금까지 세상에 태어나 학교를 다녔고 결혼하여 자녀를 키우며 살지만 경제적으로 곤궁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 이유로 세상에서 가장 고마운 존재가 부친이다.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올초 부친의 건강이 악화되어 몇 개월 견디기 힘들다는 얘기가 나올 때 하느님과도 같던 부친의 존재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국제시장' 영화에서 월남한 가족이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 치던 모습이 아른거린다. 그 영화에서는 포로수용소의 모습은 나오지 않았지만 우리 부친은 젊은 시절 그 영화의 주인공보다 더욱 힘든 시간을 보낸 분인지도 모른다. 대학 때 부친께 당구비 좀 달라고 했다가 무척 기분 나쁜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땐 부친이 왜 그리 인색해 보였을까? 그리고 그땐 반항하며 대들기도 하였다. 인간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을 대하게 되나 보다. 만일 부친이 돈을 펑펑 쓰는 스타일이었다면 내가 지금 어디 돈을 빌리러 다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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