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란 나라는 간판을 중시한다. 간판은 학벌을 의미한다. 지금도 간판이 중요하지만 지금은 학벌과 능력이 결합된 형태라면 과거엔 간판 하나에 의해 삶이 좌우되던 세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때는 전공에 관계없이 뭐니 뭐니 해도 S대, 그다음이 Y대 상대, K대 법대였다. S대 법대 졸업자는 사법고시를 통과하면 판검사나 변호사로 살지만 언론계나 재계할 것 없이 가는 곳마다 대환영을 받기도 했다
이런 학벌지상주의는 나름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다. 엘리트 재원을 조기에 키운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명문대 입학은 명문고가, 명문고 입학은 명문 중이 중심이 되었기에 특히 그러하였다. 그런 장점이 있긴 하지만 삶이 20대 초반에 거의 결정되다시피 하고 기득권을 조기에 손에 넣은 사람들이 자기 계발보다 학연이 중심이 되어 사회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단점도 있었다. 특히 늦게 잠재력을 꽃피운 사람의 경우에는 그러한 교육제도 때문에 피해를 보기도 했다.
이러한 학벌의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평준화'란 대안이 나왔다. 그 대안도 나름의 부작용이 있었다. 말이 좋아 평준화이지 인간의 능력이 각기 달라 같은 반에 상위권, 중위권, 하위권으로 구성된 학생들을 어느 수준에 맞춰 가르쳐야 할지 난감하다는 것이다. 과거엔 명문이든 비명문이든 한 반에는 비슷한 수준의 학생들이 있었기에 그러한 문제는 없었던 것이다.
평준화든 아니든 주어진 분야에서 능력이 출중했던 사람은 언제나 인정을 받았다. 평준화인 지금의 경우 명문대에서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야 어디에 가도 인정을 받겠지만 과거와 달라진 점은 명문대라도 그 이름에 걸맞지 않은 능력일 경우 밀릴 수 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학벌주의가 능력주의로 바뀐 것이다. 과거 학벌주의 사회의 경우 능력이 있지만 가정형편이나 입시운이 없어 명문대를 못 간 사람들 중 미국 유학을 가서 박사학위를 취득해 온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스스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며 인생역전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였다.
세계적으로 끝없는 경쟁이 펼쳐진다.
이제는 20대 초반까지 이뤄놓은 걸로 평생을 먹고사는 세상은 지났으며 미국에서 따온 학위 하나만으로도 평생을 보장받기는 어렵다. 소속된 분야에서 부단한 자기 계발로 끝없이 펼쳐지는 경쟁에서 살아남는 자가 아니라면 누구도 미래를 보장받기는 어려우리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