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놈과 서울깍쟁이

by 최봉기

과거로부터 "말은 낳으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이 나온 건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것 같은데 한양은 왕이 사는 곳일 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이 었기에 그랬을 것 같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 중 서울이 고향인 경우는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윤석렬 대통령이 최초)은 약간 이해가 되지 않지만 나름의 이유는 있을 법 싶다.


서울이란 곳은 전국 각지에서 날고뛰는 사람들이 모여 경쟁하는 곳이다. 대통령 관저, 행정부처부터 대학교와 대기업에 방송국, 신문사, 연예인과 조폭 조직까지 모여있다. 서울은 "눈 감으면 코 베어 가는 곳"이라 하고 서울 사람은 '서울깍쟁이'로 비하하기도 한다. 겉으로는 합리적이고 예의가 바른 게 서울 사람이지만 속으로는 자기밖에 모른다는 의미이다. 그런 사고방식으로는 기본생활이나 해나가는 정도라면 몰라도 큰 일을 이뤄내기는 어렵다. 큰 그릇이라면 스케일도 크고 자기 자신의 이해관계나 눈앞의 이익보다 국가나 민족의 운명을 고민하고 생각이 다른 사람까지 포용할 수 있어야 하건만 눈앞의 이익에 목을 매고 손해 볼 일은 기피하는 안정추구형이라면 그 그릇에 맞는 일을 찾는 게 상책일 수 있다.


서울은 오래전부터 세상의 중심이었기에 유학, 취업, 사업 등과 관련하여 시골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특히 산업기반이 취약했던 호남의 경우 서울 이주자가 많았고 그 와중에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물리며 영호남 간 망국적인 지역감정이 생기기도 했다. 전국 방방곡곡마다 서울에 가서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특히 가요계에서 영호남 출신들은 지역을 등에 업고 인기 경쟁을 펼쳤다. 남진, 조미미, 이수미, 송대관, 김연자 등이 호남을 그리고 박일남, 펄시스터즈, 나훈아, 문주란, 정훈희, 현철, 설운도 등이 영남을 각각 대표하였다. 영화계에서도 호남은 박노식, 윤정희 등, 영남은 신성일, 트위스트 김 등이 인기를 끌었다.


정치분야에서도 호남은 DJ, 영남은 YS를 중심으로 경쟁구도를 이어갔다. 지금껏 전국에서 큰 시위가 일어난 곳은 부산, 마산과 광주 세도시 외엔 없었다고 한다. 서울에 올라온 영호남 엘리트들은 법조계, 언론계, 재계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키워나갔다. 촌놈들은 특유의 끈끈함과 끝을 보고야 마는 저돌적인 기질을 바탕으로 나름 힘을 키워갔으며 결국 그 지역의 리더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서울깍쟁이들은 정치권력의 중심보다는 주변을 맴돌며 떡보다 기껏 떡고물을 주워 담는 일을 했다.


뭐니 해도 큰 인물은 도시보다는 농촌, 어촌이나 산골 등 세상에서 별 주목받지 않는 곳에서 태어나 자연적인 환경 속에서 꿈을 키우며 성장하여 서울과 같은 큰 곳에서 세계를 향해 포부를 펼친다. 촌놈들은 서울깍쟁이에 비해 투박하고 세련미는 떨어지지만 가슴속에 품은 야망을 실현시키는 점에 있어서는 서울깍쟁이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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