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소심증의 극복

by 최봉기

1982년 발행된 후 국내 출판 사상 최초의 논픽션 밀리어네어로 기록된 정신과 의사 이시형 저 '배짱으로 삽시다'는 현재까지 250만 명의 독자를 가진 스테디셀러이다. 이 책이 이렇게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비결은 뭐니 해도 산업화 과정에서 생긴 조급증, 소심증과 대인 불안증과 열등감, 체면 등으로 경직된 우리 사회의 혈류를 속시원히 뚫어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교 1학년 때 이 책을 꽤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 나 자신은 무척 소심한 편이어서 소심증을 스스로 치유해 보려는 의도로 그 책을 정독 하였


지금은 40년이 훌쩍 지나 그 시절을 떠올려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우선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가 되는 배경을 보면 부모로부터 물려받거나, 아니면 그런 식으로 집이나 학교에서 키워지는 경우일 것 같다. 부모나 선생님이 대범하다면 자식이나 제자가 소심해질 경우는 많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개 어려서부터 도시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대범해지기가 쉽지 않다. 갑갑하고도 짜인 삶의 틀에 맞춰 지내지 않으면 마치 이상한 사람인 양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마냥 정해진 틀만 좇아 순종적이기만 할 경우 예상치 않은 일이 생길 때마다 당황하고 소심해지기 쉽다. 그런 식으로 소심증이 생기지만 소심증을 극복하지 않고는 험한 세상을 살아가기 어렵다.


나는 고교 때 비교적 순종적인 편이었는데 덜 순종적인 친구들은 술, 담배 혹은 심할 경우 마약까지 하며 애인까지 있었고 그 나이에 애 아빠가 되거나 될 뻔한 경우도 있었다. 한 친구는 병원에 임신시킨 여자 친구를 데리고 가서 낙태한 얘기를 들려주었는데 당시 나로서는 상상을 뛰어넘는 얘기였다.


양순하게 길들여 있는 사람이라면 다양한 경험을 해본 사람으로부터 한 번씩은 험한 삶의 얘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조언은 조언이지 그게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될 수는 없다. 일단 성인이 되면 모든 건 자신이 판단하고 결정도 해야 하는데 소심하여 우유부단하기만 할 경우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따라서 때로는 대담할 필요도 있고 배짱도 필요하다.


소심증은 어찌 보면 주로 학교 때 범생들이 가지는 증상일지 모른다. 불량하거나 옆길로 빠져 본 친구라면 속은 비어있을 망정 한 번씩 만만한 사람들 앞에서 객기를 부리거나 영웅심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공부만 하고 교과서적으로 생활한 경우는 으슥한 골목에서 건달이 시비를 걸기만 해도 어쩔 줄 모르게 된다. 그럴 때는 맞짱 한번 뜰 정도는 되어야 한다.


삶 자체는 그리 호락한 게 절대 아니다. 평탄한 삶이라도 간혹은 평지풍파가 일기도 한다. 그럴 땐 지금까지 살아온 것과는 달리 판을 새로 짜야하기도 한다. 당황스러울 경우에도 소심하지 않고 대담하게 또한 냉정하게 판단하여 험한 물결을 헤치고 항해를 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말하기의 효과와 중요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