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는 과거로부터 불교와 함께 공자로 대표되는 유교를 신봉하였다. 송나라 주희가 창시한 성리학은 유학중에서 매우 보수적 성향이 강한 것으로서 조선의 치국이념이 되었다. 그 이유는 고려는 불교를 국교로 삼았지만 절이 온갖 부패의 온상이 되자 불교 대신 새로운 통치이념으로 성리학을 채택했던 것이다.
공자가 제시한 유교의 이념은 주나라를 모델로 한 국가 질서위에서 '인' 과 '예'를 바탕으로 조화로운 사회를 구축하려 한 것이지만 성리학은 유교적 토대위에서 양반 중심의 지배와 가부장적 가족의 질서를 근간으로 보수적 양반관료체계를 이루는 기반이 되었다.
그런 엄격한 계급중심의 사회에 서양의 종교가 유입되었다. 18세기 후반 남인 계열 실학자들이 당시 정치와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고자 천주교 서적을 읽으며 세례를 받기 시작했는데 조정은 처음에 이를 가만히 지켜봤지만 갈수록 교세가 커지자 조상의 제사를 거부하고 양반 중심의 신분질서를 부정하며 국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걸 문제삼으며 천주교를 사교로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19세기초 순조때 대탄압으로 많은 양반이 천주교를 떠났지만 그후 세도정치기에 탄압 완화로 다시 퍼지기 시작하였다. 세도정치로 인한 사회불안과 어려운 현실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는데 신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논리와 내세 신앙 등의 교리가 일부 백성에게 공감을 얻기도 하였다.
지금까지 조선시대때 치국이념이던 유교와 서양에서 들어온 천주교에 대해 살펴보았다. 유교는 종교라기보다는 인간의 도리를 가르치고 국가를 통치하는 이념인 반면, 천주교는 신의 피조물인 인간은 조물주에게 절대 복종함으로써 죄의 회개를 통해 구원을 받는 종교이다. 왕이 통치하며 양반이 중심인 조선에 들어온 천주교는 신분 질서를 부정하고 왕의 권위에 도전하였기에 탄압을 받기도 했지만 이제는 천주교, 개신교를 포함한 많은 종파의 신앙인들이 주일마다 교회에 모여들고 있다.
유교와 크리스트교는 서로 전혀 다르지만 일부 공통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유교는 '어진 마음'을 크리스트교는 '사랑'을 강조한다. 사실 불교의 '자비'도 그 의미는 별반 차이가 없는 걸로 보인다. 착하게 살며 봉사하고 희생한다는 것은 유교나 그리스트교나 불교할 것 없이 일치한다. 단지 실천하기가 어려울 뿐이다.
유교와 크리스트교가 다른 점은 우선 공자는 사후의 세계에 대해 묻자 "생도 잘 모르는데 어찌 사를 논하겠는가?" 라고 답했다. 크리스트교는 신을 인정하며 눈을 감고 하느님에게 기도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에게 기도를 하는데 그 기도의 내용은 주변에 힘든 생활을 하는 이웃이나 그 가족을 위해서 이거나 혹은 청빈한 삶에 대한 감사나 구원보다 자신과 자기 가족의 현실적 행복을 위한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다. 사실 구원을 받으려면 현실의 삶이 부유하기보다는 가난해야 할지 모른다. 성서에 "부자가 천당에 가기는 낙타가 바늘귀로 가는 것보다 어렵다"(마테오 19:24)고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