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상들은 배고플 때엔 기름진 하얀 쌀밥을 먹어보는 게 소원이었다고 한다. 보리고개 때에는 굶기를 밥 먹듯 했다. 평소에도 부자가 아니면 대개 하루에 두 끼를 먹었고 반찬도 김치랑 나물 두어 가지에 국 하나 놓고 먹었으니 신체도 자그마하고 얼굴 빛깔이나 영양 상태가 좋을 리 없었다. 자기만 그러면 불만이 컸겠지만 옆집, 앞집이 모두 그러하니 그런 생활을 당연시했다. 인간에게 있어 배고픔의 고통이란 참기가 무척 어려워 극단적으로 아사 상태가 되면 식인종이 아니라도 인육을 먹게 되기까지 한다고 한다. 배고플 땐 먹는 문제만 해결되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지만 그때부터 온갖 새로운 욕구가 꿈틀대기 시작한다.
한국전쟁 때 그리고 휴전 이후에도 한동안 춤바람이 유행하였다. 총탄과 포화 속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끼니도 해결하지 못하다 휴전이 되고 생활이 조금 안정이 되자 놀랍게도 카바레가 우후죽순처럼 생기며 미국에서 들어온 음악과 춤이 삶 속으로 침투하는 새로운 풍속도가 그려졌다. 불과 얼마 전까지 전쟁의 잔혹함 속에서 생존이 위협받고 먹을 게 없어 허덕이다 이리도 순식간에 세상이 바뀌게 된 건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와 함께 야구나 축구를 비롯, 복싱이나 프로레슬링과 같은 스포츠도 전 국민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한일전이 벌어질 경우 마치 전쟁과도 같은 목숨을 건 일전이 펼쳐지며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또한 시중에 수입 영화나 국내 제작 영화가 개봉되어 절찬리에 상영될 때엔 영화의 스토리를 포함해 인상적인 장면이 관람객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며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지금은 그때와는 차원이 다른 세상이다. 파트타임으로 일을 해도 끼니 정도는 해결을 한다. 이제는 먹느냐 못 먹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무얼 먹느냐 또한 어디서 먹느냐에 따라 비용이 크게 차이가 난다. 입고 자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초호화 주택에서 살며 유명 브랜드의 옷과 구두와 승용차를 타고 다니니 의식주의 문제도 생존을 넘어 새로운 차원의 만족 대상이 되었고 여행, 레저와 취미생활도 부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은 제어되지 않은 채 계속 위를 향하는데 당장 돈이 되지 않는 순수 예술, 문학과 함께 철학적, 정신적 가치는 갈수록 홀대받는 세상이 되는 건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막강한 힘으로 서양을 통치했던 로마가 몰락했던 이유를 보면 의식주 문제 때문이라기보다 풍족함이 지나쳐 쾌락추구만 일삼다 보니 삶의 방향성을 잃게 된 것 때문이라 한다.
현재 인간들의 삶도 그리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욕망과 위세는 계속 치솟기만 하고 못살던 시절 자그마한 것도 나누던 온정과 배려심 대신 이기주의와 독선이 판을 친다. 지긋지긋했던 가난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의욕에 불타고 정의감으로 불의에 저항했던 70, 80년대 대한민국 국민의 열정과 투혼이 무척이나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