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주관이 필요한 이유

by 최봉기

'객관적'이란 말을 예전에는 무척 자주 사용했지만 이젠 그 말을 잘 쓰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말이 객관이지 실제로 객관이란 말은 위장 혹은 위선적인 것이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자신의 입으로 말을 하고 자신의 머리로 생각을 한다. 그런데 그 속에 남까지 포함시켜 마치 제삼자의 입장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사실 의문이 가며 진실성이 의심된다.


객관적인 시각이 진정 필요한 경우라면 법정에서 판결을 내리는 것이라 보인다. 판사는 변호인과 검사의 얘기를 듣지만 한쪽의 주장에 자신의 주관이 개입되어 버린다면 재판은 공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인간은 100% 객관적일 수는 없다고 보인다.


'객관'이란 말이 가지는 한계 때문인지 이제는 어설픈 객관보다는 오히려 분명한 주관에 마음이 간다. 주관이 분명할 경우 오히려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고 주관이 없어 이득을 볼 수도 있긴 하다. 하지만 인생이란 건 한 번의 상황이 아닌 매 순간 새로운 상황이 닥치는데 그때마다 남들 하는 대로 따라갈 수는 없다. 또한 사람은 저마다 개성과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처신하는 건 그걸로 인해 설령 불이익을 받는다 해도 전체로 보면 가치 있는 일임에 분명하다.


역사적으로 위인들은 자신의 주관이 무척 뚜렷했을 걸로 보인다. 대개 주관이 강한 사람들은 용감하고 당당하다. "전하! 저에게는 아직 13척의 배가 있나이다."와 같은 말에는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함과 강한 확신이 들어있다. 또한 주관이 강하고 당당한 이들은 '안중근'이나 '윤봉길'처럼 눈앞의 자기 이익보다는 큰 뜻을 가슴에 품고 산다. 반면 '이완용'과 같은 이들은 상황판단과 유불리의 계산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교함을 가지고 있다. 그는 친일주의자였지만 한때 친러주의자였고 장수했다면 친미주의자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객관적'이란 애매한 말보다 '제 생각은'과 같은 분명한 표현을 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불확실하고 갑갑한 세상살이가 시원시원해지지 않을까 싶다. 인생의 주인공은 뭐니 해도 자기 자신이다. 남들 눈치나 보고 쫓아가기만 한다면 손해 볼 일은 적을지 모르지만 남의 인생이나 살다 사라지는 삶이 되리라 보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인간 세상과 텃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