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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신분의 허와 실

by 최봉기

과거 조선시대에는 태어날 때부터 신분이 정해졌기에 백정과 노비 등 천민은 암만 능력이 뛰어나도 그 신분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다. 당시의 양반과 쌍것 간의 신분 차별은 과거 미국의 흑백 간 갈등 이상이었다. 구한말 의병운동을 할 때 쌍것이 양반에게 대들다 그 자리에서 바로 죽임을 당한 일이 실제로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과거시험도 농사짓는 양민부터 기회가 주어졌지만 농사를 지으며 과거에 응시하기란 거의 불가능했기에 과거는 사실 양반 자제가 아니면 응시 자체가 어려웠다. 그 후 1895년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폐지되자 노비도 이젠 세습이란 어두운 감옥에서 해방되게 되었다.


세상이 바뀌어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누구나 능력만 있으면 대통령도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현대판 신분간 벽이란 게 아직 존재한다. 다시 말해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 즉 직업과 집안에 따라 신분이 상중하로 구분되는 것을 의미한다. 집안이란 집안 어른이나 구성원들의 직업, 사회적 지위나 명망도와 재산 정도 등을 말한다. 개인이 명문대를 나와 고시에 합격하거나 혹은 의사 등 전문직이거나 박사라면 남들 앞에서 당당하게 명함을 꺼내며 자기소개를 할 수 있다. 그 경우에도 집안을 언급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결혼을 할 경우 자신의 능력이나 사회적 지위에 '집안'이란 조건이 추가된다. 개인은 나름 유능한데 집안까지 좋을 경우 '신의 아들', 개인은 유능한데 집안은 별로일 경우 '사람의 아들', 개인도 집안도 별로일 경우엔 '어둠의 자식들'이라면 웃긴 개그이지만 나름 일리 있는 얘기가 될지도 모른다. 위의 세 가지 구분은 한때 병역 관련 면제, 보충역, 현역을 지칭한 말이기도 하다.


이렇듯 현대에도 상, 중, 하로 신분간 격차가 나름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또한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면서 과거처럼 개천에서 용이 나오기는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과거 중하류 출신 대통령 한분은 힘차게 개혁을 부르짖다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보수의 거센 저항에 부딪쳤고 결국 검찰조사를 받다 스스로 삶을 포기하기도 했다. 현실은 이렇듯 차갑고 어찌 보면 더럽기도 하다. 과거나 현재 할 것 없이 인간에겐 계급이라 할 수 있는 신분이 있었는데 인격이나 도덕성은 그 고려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채 현실적인 가치와 이해관계등을 반영하여 구분했던 걸로 보인다. 일제강점기 때엔 누가 더 일본에 충성했는지, 현재는 누가 재산 혹은 연봉이 많은가가 신분 구분의 기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듯싶다. 2천 년 전 이스라엘에서도 중하류 출신이었던 한 인물이 기득권 상류층의 권위에 도전했다는 누명으로 십자가형이란 끔찍한 극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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