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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회지의 삭막한 삶과 꿈

by 최봉기

시골과 달리 도시란 곳은 삭막하고 저마다 돈벌이하러 모인 사람들 간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 것에만 목을 매다 보니 인간적인 따뜻함보다는 갑갑함과 냉랭함이 자리할 뿐이다. 오죽하면 "눈 감으면 코 베어 간다"는 말이 나왔을까?


사방이 온통 자연숲 대신 아파트숲이다. 한때 이농현상이 심할 때에는 시골을 떠나 서울로 향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고 역 앞에는 하이에나와 같은 인간들이 저마다 먹이를 찾아 서성대기도 했다. 별생각 없이 올라온 시골 처녀들은 인신매매업자의 표적이 되어 돈 벌게 해 준다는 말에 넘어가 황석영의 소설 제목처럼 '어둠의 자식'이 되기도 했다.


해마다 신학기가 되면 서울의 각 대학 주변은 지방에서 올라온 신입생들이 하숙집을 구하느라 붐비기도 했다. 학교 주변은 주로 학생들을 상대로 장사하다 보니 음식 가격은 도심보다 저렴하지만 인심은 예부터 야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숙을 치는 사람들은 해마다 하숙비를 올려 받지만 식탁 위에 올려놓는 반찬 수준은 늘 그 수준이었다. 하숙집 밥상에 오른 반찬은 군대의 식단과 더불어 시중의 반찬별 가격이 눈에 그려진다. 마늘 장아찌가 자주 상에 오르는 경우 그해 마늘의 작황이 좋아진 건지 가격이 바닥 수준임을 짐작케 한다. 하숙집 밥상은 대개 육류보다는 채소 위주이다 보니 "밥상 위로 말이 달린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다 하숙비를 낼 날이 가까워지면 흑백 필름 같던 식탁 위가 갑자기 총천연색으로 바뀌는데 하숙비가 걷힌 다음날부터는 급하게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도 했다.


이렇듯 삭막한 도시에서 만일 꿈조차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스스로를 지켜내기 조차 어려울지 모른다. 서울에 올라와 큰 꿈을 이룬 기업가나 복서 혹은 연예인들은 자신이 가진 재능과 성공을 향한 굳은 의지와 뼈를 깎는 노력이 어우러져 성공에 도달했지만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연기처럼 사라진 경우도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일 것이다.


고인이 된 기업가 '정주영'은 강원도 통천에서 가출해 서울로 올라와 공사장 임부, 쌀가게 점원 등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사채를 얻어 자동차 정비업을 할 때엔 화재로 공장이 전부 불탔지만 망연자실해하던 사채업자가 속은 셈 치고 성공해서 꼭 갚으라고 다시 쥐어준 돈으로 재도전하여 지금의 현대자동차를 탄생시켰다고 한다.


가수 '나훈아'도 가수가 되려 처음 서울에 왔을 땐 음반제작사에서 청소나 하며 별 볼 일 없던 무명가수였지만 작곡가에게 간청해 취입한 곡이 크게 히트 치면서 빚투성이었던 회사가 돈을 벌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자신에게 노래할 기회가 계속 생기게 됨에 따라 결국 최고의 가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영화배우 '신성일'도 대구에서 집이 망해 서울에 올라와 청계천에서 호떡장사를 하며 어렵게 살다 영화배우 모집 공고를 보고는 천대일 이상의 엄청난 경쟁을 뚫고 영화배우로 발탁된 후 생애 총 500여 편의 영화를 찍으며 한때 연예인 최고액 납세자의 기록과 함께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가 되었다.


위의 성공한 이야기 외에 묻혀버린 서글픈 이야기도 많을 듯싶다. 복서로 세계챔피언이 되었지만 일이 잘 안 풀리며 30대 때 자살로 삶을 마감했던 비운의 인물도 있고 젊은 나이에 놀라운 기세로 율산그룹 신화를 이룩했던 한 사업가도 한때의 영화를 저 멀리 한 채 뒤안길로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가왕이라 불린 '조용필'은 무명시절 시내 모 업소에서 사람이 가장 적은 시간에 잠깐씩 노래를 하던 록음악 가수가 별 생각 없이 트로트풍으로 불렀던 곡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예상외로 큰 선풍을 일으키며 일약 스타로 부상하였다. 그 후 한참 시간이 지나 그가 부른 '꿈'이란 노래에는 과거 무명시절 삭막한 도시의 힘든 현실 속에서 꿈을 간직한 채 음악에 자신의 육체와 영혼을 던질 때 꿈틀대던 설움이 그대로 묻어 있다. 한때 그는 이 노래를 부르는 도중 과거의 애환이 밀려온 듯 안경 사이로 눈물을 떨구기도 했다.


조 용필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왔네

그곳은 춥고도 험한 곳

여기저기 헤매다 초라한 문턱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머나먼 길을 찾아 여기에 꿈을 찾아 여기에

괴롭고도 험한 이 길을 왔는데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네


사람들은 저마다 고향을 찾아가네

나는 여기 홀로 남아서

빌딩 속을 헤매다 초라한 골목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저기 저 별은 나의 마음 알까?

나의 꿈을 알까?

괴로울 땐 슬픈 노래를 부른다

슬퍼질 땐 차라리 나 홀로 눈을 감고 싶어

고향의 향기 들으면서

저기 저 별은 나의 마음 알까

나의 꿈을 알까

괴로울 땐 슬픈 노래를 부른다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네

슬퍼질 땐 차라리 나 홀로

눈을 감고 싶어

고향의 향기 들으면서

고향의 향기 들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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