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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내가 코미디언이 되었다면?

by 최봉기

세상은 하루하루 비슷한 일이 반복되기만 하며 꽤나 무미건조하다. 뭔가 奇上天外한 일이 벌어지길 은근히 바라는 게 사람들의 심리인지 모른다. 간혹 신문에 올라온 기사가 눈을 의심케 하기도 한다. 청순해 보이기만 하던 어느 여배우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대기업 총수와 불륜 관계였다고 하고 인기 절정의 연예인이 마약 혐의로 구속되기도 한다.


이런 뜻밖의 일들도 갑갑함을 잠시나마 잊게 만드는 청량제 역할을 할지는 모른다. 하지만 왠지 뒷맛이 씁쓸하다. 차라리 배가 아플 정도로 웃을 일이 있다면 뒤끝도 없고 한결 개운할 것 같다. 내가 어린 시절 TV에서 활동했던 코미디언들은 다들 여유 없고 바쁘기만 하던 시절 투박하고 유치하기도 한 코미디로 쓴웃음을 연출했던 반면 미군 방송에 나오던 코미디언은 투박한 몸짓 없이 마이크를 들고 말 몇 마디로 청중들을 拍掌大笑하게 만드는 선진 코미디를 선보이며 웃음 속 위엄과 권위를 보이기도 했다.


이제는 고인이 된 한때 최고 인기 코미디언 한 사람은 인터뷰에서 자신의 고충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한 번은 무대에서 "불황에도 많이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했더니 무대밖에서 "무식한 **가 불황 얘기하며 유식한 척하네"하며 야유를 보냈다고 한다. 그럴 때는 깊은 회의감을 느꼈다고 했다. "사실 경제학박사라고 해도 경제학 밖에 더 압니까?"란 말도 했다. 고인이 된 원로 희극 배우는 자식이 세상을 떠나 茫然自失하고 있는데 공연을 취소할 수 없으니 약속한 대로 무대 위에서 관객을 웃겨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럴 때에는 코미디언 일을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만일 내가 코미디언이었다면 어땠을까? 늘 유머를 즐기는 편이라 기본 이상의 실력 발휘는 하지 않았을까 싶다. 인간은 약간 삶이 여유로워지면 괴롭거나 슬프기보다는 즐겁게 지내고자 하는 바램이 있는 것 같다. 코미디란 것은 꼭 무대 위에서 코미디언만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학교 교실에서 대학 강의실에서, 군대 내무반에서, 하다 못해 교도소나 구치소에서도 코미디는 이루어지는 것 같다.


중학교 때 수업시간에 들었던 익살스러운 얘기가 기억난다. 어느 사형수가 형집행을 받으러 계단으로 올라가다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 하자 입에서 나온 말이 "하마터면 죽을 뻔했네"였다.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高麗俗謠'를 설명하던 선생님이 했던 말이다. "그 시절에 TV가 있나? 라디오가 있나? 뭐 하겠노? 농사짓는 사람이 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할 게 뭐가 있겠노? 농사일은 또 빨리 끝나잖아? 뭐 하겠노?"였다.


지인 하나가 예비군 훈련을 갔는데 교관이 했던 익살스러운 얘기를 소개한다. 父子가 공동목욕탕에 갔는데 탕에 먼저 들어간 아버지에게 자식이 "물 안 뜨거워요?"라고 하자 "안 뜨겁다"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자식이 안심하고 탕에 들어갔는데 물이 너무 뜨거웠다. 그때 자식이 했던 말이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네"였다.


이렇듯 웃음은 엔도르핀이 나오게 하며 활력을 주는 삶의 소중한 요소이다. 웃음에도 잔잔한 美笑에서부터 爆笑까지 그 종류는 꽤 다양하다. 내가 재미있게 살다 삶을 마칠 때 꼭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그건 웃으며 눈을 감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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