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살면서 마음을 한곳에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학창 시절 때에는 시험이 눈앞에 닥쳐 공부를 해야 할 때 TV에 꼭 보고 싶은 게 방영될 경우가 그러하다. 고 3 때였던 1981년 가을에 입시가 가까워져 전원 학교에서 자습을 할 때 한 친구가 당시 최고의 관심사이던 봉황대기 야구경기 결승전(경북고 : 선린상고)을 학교밖 라면집에서 보고 늦게 들어오다 자습지도 선생님께 걸려 크게 야단을 맞은 적이 있다. 만일 그 친구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해도 공부가 잘 되었을지는 의문이다.
그것과 유사하면서도 차원이 다른 경우라면 누군가를 가슴깊이 사랑할 때일는지 모른다.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하지만 상대를 볼 수 없을 때 가지는 고통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환갑이 된 나이에 그런 순수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쓴웃음이 나오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20대 때로 돌아간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내가 미국에서 대학원과정 공부를 할 때 과거 만나긴 했지만 상대방 반응이 별로여서 진행이 잘 되지 않은 채 해외로 떠났다 잠시 귀국했을 때 연락해서 함께 시간을 보냈던 이성이 있었다. 함께 보내던 시간은 모처럼 달콤했지만 막상 출국날짜가 다가오자 마음이 얼어붙는 듯했다. 출국 전 마지막 만났을 때 그런 심정을 애타게 말하자 상대의 반응은 현실적이면서 차갑기만 했다.
그리고는 미국에 돌아와 혼자 지내며 무척 힘든 시간을 보내었고 하던 공부도 더 어려워지는 등 현실적인 조건이 악화되어 결국 서로는 남남이 되었다. 나는 좀 늦게 공부를 끝내고는 귀국하여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고 그쪽도 다른 남자를 만나 가정을 갖고 산지가 30여 년이 되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애초에 안 만났더라면 좋았을 사람이고 지금은 길에서 우연히라도 볼 일이 없길 바랄 뿐이다.
최근에 얄궂게도 잊혀진 그때의 일이 생각나게 되었다. 유튜브로 보게 된 과거 1989년 TV드라마의 극중 여주인공 이름이 과거 알던 여자와 동일했는데 그 이름이 드라마에서 자주 불리어지면서 30여 년 전 별 유쾌하지도 않은 기억이 떠오르게 된 것이었다.
그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은 아주 어려운 환경에서 대학을 다니며 苦學을 하는데 입주해서 지내던 집의 가장인 의류회사 사장과의 사이에서 사회 통념상 어긋난 사랑이 싹트게 된다. 그의 안주인은 정신적으로 약간 문제가 있어 정신과 치료까지 받는 중인데 두 사람을 의심하며 그녀를 미워한다. 현재까지 총 50회 중 20회까지 밖에 보지 않은 상태지만 결론은 그녀가 그 사장 회사의 유능한 직원과 결혼하는 것이란 걸 관련 인터넷 정보를 통해 확인하게 되었다.
만일 내가 누군가를 깊이 사랑한다면 어땠을까?
나는 가정이 있는 사람이라 아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게 된다면 또한 그 사실을 아내가 알게 된다면 문제가 생긴다. 그 드라마에서 그녀는 처음에 그 사장과 가까워지지 않으려 노력한다. 사장이 경제적으로 베푸는 도움을 포함 일체 관심에 등을 돌리는데 자신도 모르게 그 사장이 그랬던 것처럼 사랑의 감정을 떨쳐버리지 못한 채 둘은 몰래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해서는 안 되는 그를 사랑하고 있고 그걸로 인해 생기는 아픔은 감수할 마음이 되어 있다는 말을 한다. 여기서 펼쳐지는 두 남녀 간의 사랑은 비정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한 인간이 누군가를 진정 사랑한다는 건 비현실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무척 오랜만에 하게 된다. 현실적인 직업이나 재산 혹은 집안 배경 등 조건이 좋아 결혼했다고 한다면 엄밀히 말해 사람과 결혼한 게 아니라 조건하고 결혼한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
세상은 갈수록 얄퍅해지고 이기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과거의 심금을 울리던 '純愛譜'는 이제 소설이나 영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미국에서 1971년에 나온 영화 ' 러브스토리'는 명문부호의 남자와 가난한 집 여자가 만나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 결혼해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다 여자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스토리이다. 남자는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고 슬피 울며 막을 내리는데 그 장면이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뜨거운 감동을 주었다. 여자를 떠나보내고 남자가 부친으로부터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했던 名대사가 "사랑은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 거예요(Love means never have to say that you are sorry)"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