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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봉기 Mar 01. 2022

배고픔과 배부름

배가 고플 땐 뭐든 먹을 것만 있으면 될 뿐 다른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인간에겐 여러 고통이 있지만 아마 배고픔보다 더한 고통은 없지 않나 싶다. 먹지 않고 인간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약 2주 정도라는데 그때까지 계속 배고픔의 고통이 있으니 죽을 땐 죽더라도 그 과정 자체가 사람을 한번 더 죽이게 된다. 역사적으로 보면 배고픔의 고통이 최고조에 이를 때에는 인간이 심지어 인육까지 먹는 일까지 생긴다고 한다. 인간은 암만 이성적일지라도 동물의 속성을 벗어나지는 못하기에 그런가 보다. 옛말에는 "수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산다"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일단 배고픔에서 벗어날 경우 인간에겐 여러 가지 배부른 선택들이 생긴다. 인제부터는 굶느냐 먹느냐가 아닌 무엇을 언제 누구랑 먹느냐가 된다. 비 오는 날은 파전에 막걸리, 맑은 날은 생선초밥, 추운 날은 따끈한 국물 등. 먹는 음식도 좋은 사람이랑 함께 먹지, 그렇지 않을 경우 차라리 혼자 먹는 경우가 속 편하다. 고인이 된 코미디의 황제 이주일이 지방 공연 사회나 보던 만년 무명시절을 지나 어느 날 유명해지자 연예계 선배였던 한 사람이 "오랜만인데 술 한잔 하자" 고 했다. 그러자 그는 "난 술 먹을 돈은 있는데 시간이 없어"라고 하다 한대 얻어맞았다고 한다. 이주일의 경우도 그러했지만 배고픔이 해결되어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고 누리고 싶은 걸 누리기 위해서는 사회적 지위도 필요한데 그는 국회의원에 출마하여 당선이 되었지만 다시 정계를 떠날 때 "정치 코미디 많이 하고 떠나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상의 내용이 배고플 때와 배부를 때의 차이이다. 인간의 욕구는 늘 낮은 데서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욕구의 바닥에 위치하는 배고픔이 해결되면 주변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친교의 시간을 가지려 하고 그다음은 남들로부터 존경받고자 하며 그것으로도 충분치 못하여 결국 자아실현이라는 단계로 향하게 된다. 결국 주변에 사람이 있어 이런저런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지만 결국 혼자서 끼니도 해결하고 최종적으로도 혼자서 자아실현을 하는 것이 인간이란 생각이 든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고 혼자서 외로울 때나 친구 혹은 선후배나 친지를 만나는 것이지 늘 혼자로서의 삶이 기본이자 시작이며 궁극적인 종착점도 혼자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나도 전후세대로서 전쟁을 겪어보지 못했으며 배고픔이란 고통을 겪어보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부모세대로부터 종종 들었던 말이 "인제 배가 불렀다"는 얘기였다. 20대 때 인제는 고인이 되신 외할머니께서 주신 돈 몇 푼을 가지고 나가 친구들과 술을 먹고 집에 들어오자 술을 잘 안 드시는 부친께서 할머니가 안 쓰시고 주신 돈으로 나가서 술을 퍼먹는다고 하시며 꾸중을 하셨던 적이 있다. 비슷한 때에 당구비 달라고 하다가 비슷한 꾸중을 듣기도 했는데 지금 나라면 그런 걸로는 핀잔을 주진 않겠지만 기성세대의 눈으로 볼 땐 철이 없어 보였을 수 있었다는 반성을 해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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