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곧 진학할 나의 딸을 보니 40여 년 전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이가 10대에서 20대가 될 때 나는 호기심이 발동하며 그전에 금지되었던 것들을 하고 싶어졌다. 그중 하나가 술집 출입, 그다음 길거리에서의 흡연 또 한 가지가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 관람이었다. 그전에도 집에서는 명절 때 혹은 친구들 몇이 소주나 맥주 혹은 과거 값싼 양주로 나왔던 캡틴큐 등을 맛볼 수는 있었건만 어른들이 삼삼오오 앉아 담배까지 피우면서 술 마시는 곳에 들어가는 것은 짜릿한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 학력고사를 치른 후 부산 시내 남포동의 커피숍에 처음 들렀을 때의 느낌은 황홀 그 자체였다. 사람들은 저마다 커피를 마시며 얘길 나누고 DJ박스의 DJ는 신청곡을 찾기 위해 레코드판을 뒤지며 잠시 후 음악이 울려 퍼지던 모습이 지금 나에겐 아무것도 아니지만 당시 10대였던 나에겐 환상적이었다. 아직 완전한 성인은 아니었지만 커피에 담배도 피우며 어른 흉내를 마구 내기도 했다.
내가 10대 때 영화관에서 청소년은 절대 입장시켜 주지 않았던 대표적인 영화가 로버트 드니로, 메릴 스트립 주연 '디어 헌터'였다. 월남전 때 인간의 목숨을 담보로 '러시안룰렛'이란 도박을 하던 끔찍한 장면이 나오는 영화였다. 그밖에 말론 브란도, 알 파치노 주연 '대부'. 이탈리아 시칠리 섬에서 이주해 뉴욕에 본거지를 둔 폭력조직 마피아의 잔인한 실상을 보여준 영화였다. 가수 하나가 홀대를 받자 문제를 해결해주러 마피아의 조직원이 연예계 실력자를 만나 보았지만 별 소득이 없자 그 실력자의 애마를 죽여 피가 흥건한 말머리를 그가 자던 침대에 묻어두고 잠에서 깨던 그 실력자가 손과 잠옷에 피가 묻은 채로 말의 피 묻은 머리를 확인하고 공포에 떨며 비명을 지르던 장면은 압권이었다.
국내 영화 중에서도 '별들의 고향', '영자의 전성시대', '겨울여자' 등도 대표적인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였다. 겨울여자의 남자 주연은 몇 년 전 세상을 하직하였다.
지금 쉰을 넘어 예순을 앞둔 사람들에게 '미성년자 관람불가'란 말은 왠지 격에 맞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몇 주 후면 해가 바뀌고 성인이 되어 대학생이 될 우리 딸을 떠올려 보면 마치 나의 일과도 같이 다가오기도 한다. 40여 년 전 처음으로 부산을 떠나 서울로 올라와 낯선 명동 건너 소공동 롯데 쇼핑센터 입구에 짧은 머리의 10대들이 서서 끽연도 하며 어른 흉내 내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