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봉기 Mar 01. 2022

미성년자 관람불가

인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곧 진학할 나의 딸을 보니 40여 년 전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이가 10대에서 20대가 될 때 나는 호기심이 발동하며 그전에 금지되었던 것들을 하고 싶어졌다. 그중 하나가 술집 출입, 그다음 길거리에서의 흡연 또 한 가지가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 관람이었다. 그전에도 집에서는 명절 때 혹은 친구들 몇이 소주나 맥주 혹은 과거 값싼 양주로 나왔던 캡틴큐 등을 맛볼 수는 있었건만 어른들이 삼삼오오 앉아 담배까지 피우면서 술 마시는 곳에 들어가는 것은 짜릿한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 학력고사를 치른 후  부산 시내 남포동의 커피숍에 처음 들렀을 때의 느낌은 황홀 그 자체였다. 사람들은 저마다 커피를 마시며 얘길 나누고 DJ박스의 DJ는 신청곡을 찾기 위해 레코드판을 뒤지며 잠시 후 음악이 울려 퍼지던  모습이 지금 나에겐 아무것도 아니지만 당시 10대였던 나에겐 환상적이었다. 아직 완전한 성인은 아니었지만 커피에 담배도 피우며 어른 흉내를 마구 내기도 했다.


내가 10대 때 영화관에서 청소년은 절대 입장시켜 주지 않았던 대표적인 영화가 로버트 드니로, 메릴 스트립 주연 '디어 헌터'였다. 월남전 때 인간의 목숨을 담보로 '러시안룰렛'이란 도박을 하던 끔찍한 장면이 나오는 영화였다. 그밖에 말론 브란도, 알 파치노 주연 '대부'. 이탈리아 시칠리 섬에서 이주해 뉴욕에 본거지를 둔 폭력조직 마피아의 잔인한 실상을  보여준 영화였다. 가수 하나가 홀대를 받자 문제를 해결해주러 마피아의 조직원이 연예계 실력자를 만나 보았지만 별 소득이 없자 그 실력자의 애마를 죽여 피가 흥건한 말머리를 그가 자던 침대에 묻어두고 잠에서 깨던 그 실력자가 손과 잠옷에 피가 묻은 채로 말의 피 묻은 머리를 확인하고 공포에 떨며 비명을 지르던 장면은 압권이었다.


국내 영화 중에서도 '별들의 고향', '영자의 전성시대', '겨울여자' 등도 대표적인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였다. 겨울여자의 남자 주연은 몇 년 전 세상을 하직하였다.


지금 쉰을 넘어 예순을 앞둔 사람들에게 '미성년자 관람불가'란 말은 왠지 격에 맞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몇 주 후면 해가 바뀌고 성인이 되어 대학생이 될 우리 딸을 떠올려 보면 마치 나의 일과도 같이 다가오기도 한다. 40여 년 전 처음으로 부산을 떠나 서울로 올라와 낯선 명동 건너 소공동 롯데 쇼핑센터 입구에 짧은 머리의 10대들이 서서 끽연도 하며 어른 흉내 내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작가의 이전글 배고픔과 배부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