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현재 분명 최근 IMF가 선정한 41개의 선진국 중 하나인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대한민국이 최근 성장률이나 무역수지 등 경제여건이 좋지 못하지만 누구도 코리아를 70~80년대의 개발도상국으로 보지 않는다. 나는 자칭 '中進國'이라 부르던 그 시절에 유년과 청년 시절을 보내었기에 그때와 지금의 삶의 질 차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나의 자녀들은 모두 대한민국이 선진국일 때 태어났기에 개도국 시절의 생활상을 잘 알지 못할 것이다. 내가 초중학생이던 1970년 초중반은 전쟁이 끝난 지 20여 년이 지난 때였고 학교에서는 국가유공자의 옛말 '원호대상자', 즉 상이군경 자녀들을 파악하여 그들에게는 공납금 면제 등의 혜택을 주기도 했다. 또한 집 주변 곳곳에는 손 대신 갈고리로 물건을 집거나 목발이나 의족에 의존해서 다니는 사람들이 꽤 보이기도 했다. 이상의 내용은 전쟁이 가져온 참상의 일부이며 골목에는 거지들이 밥때가 되면 구걸해 온 밥을 쪼그리고 앉아 먹는 등 생활 수준이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당시에는 현재의 삼성반도체나 현대자동차와 같은 세계적인 브랜드가 거의 없었고 지금은 사라진 동명목재의 합판을 비롯해 섬유의류, 가발 등 경공업제품과 함께 전자, 조선 등의 수출에 목을 매었다. 집 주변에는 곳곳에 보세공장들이 있었고 부산 외곽에 위치한 사상공단이란 곳에는 속된 말로 '공순이'라 불리는 시골 출신 소녀와 처녀들이 좁은 공간에서 밤낮 할 것 없이 옷이나 운동화를 만드는 일에 매달렸다. 공단 외에도 시내버스에서는 야간에 공부를 하는 여고생들이 차장 일을 하기도 했다.
만일 내가 대한민국이 가난하던 60년대가 아닌 우리 자녀들처럼 부유해진 지금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버스 대신 자가용을 타고 다니고 추운 겨울 따뜻한 거실에서 소파에 앉아 편안한 생활을 할 뿐 아니라 더운 여름 셔츠를 벗기는커녕 시원한 방에서 겉옷을 하나 걸치고 지내는 생활을 할 것이다. 또한 늘 휴지가 있는 깨끗한 공동화장실을 사용할 것이다. 현재 선진국에 산다는 걸 실감케 하는 가장 대표적인 곳이 지하철역과 고속도로 휴게실의 화장실이다.
나는 1981년 겨울 대학 입학 전 한 달 동안 영어 스피킹을 배우러 부산 미군부대의 가족아파트를 들른 적이 있다. 그곳은 한마디로 別天地였다. 겨울이건만 실내가 외풍 하나 없이 후끈했고 빨래를 실내에서 전기건조기에 넣어 말리는 모습을 보며 과연 우리는 언제 이런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이 정도 수준의 생활은 누구나 하며 지낸다. 하지만 현재 삶의 수준에 오기까지 전후 폐허 속에서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이 있었는지 자문해보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다들 그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기에 우리 자녀들로 하여금 한 달 정도라도 그 시절 생활을 체험해 보게 한다면 어떨까 싶다. 겨울에 히터 대신 외풍이 있는 온돌방에서 찬공기도 맞아보게 하고 여름에는 에어컨 대신 부채나 선풍기로 흐르는 땀을 훔치게 하는 것이다. 일부러라도 그러한 체험이 필요한 이유는 현재 삶의 수준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몸소 느껴보게 하는 것이며 또한 과거의 가난한 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는지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김수영 시인이 4.19를 경험하며 쓴 시에는 "자유에는 피냄새가 나며 혁명은 고독하다"라고 표현하였다. 나는 지금의 삶의 질을 떠올리며 "행복에는 땀냄새가 나며 편안함은 눈물의 대가"라고 표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