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내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한다면?

by 최봉기

사랑은 어찌 보면 형체가 없이 마치 상상 속에서 존재하는 무언가인지 모른다. 현실에서의 사랑은

상대를 조금씩 이해해 갈수록 드라이아이스처럼 증발해 버리는 것 같기도 하다. 또한 마음속에 사랑이 싹트고 둘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 결혼에 골인할 경우에도 이젠 현실 속에서 함께 생활을 해야 하기에 그 또한 처음 맛보던 사랑의 느낌과는 다른 차원의 걸로 변해 버리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이루어진 통념적인 사랑보다 한결 애절함과 고귀함을 느끼게 한다.


그러한 속성을 가진 게 사랑이라 그런지 남녀 간 로맨스를 다루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어느새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에 더욱 매료되는지 모른다. 멀리서 현해탄을 건너 '겨울戀歌' 투어를 오는 여성들에게 '준상'(배용준 분)은 그들 마음속에 자리 잡은 하나의 영원한 이상적인 존재와도 같아 보인다.


나도 한때는 한 이성을 마치 영원한 나의 이상인 양 맘속에 두고 지낸 적이 있다. 지금은 그런 생각이 忘念이 되어버린 지 오래지만 만일 지금까지 그런 생각으로 지냈다면 아마도 현실이 아닌 공상 속에서 사는 비정상적인 사람이 되어 있었을지 모른다. 詩人 김소월은 임종 순간 첫사랑의 이름을 부르며 이루지 못한 사랑을 아쉬워했다고 했다. 나는 그 정도가 아닌 게 다행인지 모른다. 하지만 살면서 한 번은 현실을 벗어난 로맨티시즘도 있어야 통장의 입출금내역 혹은 잔액이나 확인하며 사는 냉랭하고도 재미없는 현실이 삶의 전부는 아님을 새삼 느끼게 될 것이다.


만일 내가 영화 속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의 주인공이라면 어땠을까? '닥터지바고'의 지바고 (오마샤리프 분)은 영화 속에서 유부남이었지만 라라라는 여성을 마음에 두며 그녀와 떨어졌다 만났다 하는 과정을 거치지만 결국 둘은 연인으로 깊은 관계를 가진 후 축복받지 못한 한 생명을 잉태한다. 정처 없는 시간이 흘러 러시아는 혁명을 통해 왕정이 무너지고 새로운 나라가 되었을 때 지바고는 버스창가를 통해 차길을 걸어가는 라라를 우연히 발견하고는 걸음을 재촉하다 차 안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지며 눈을 감는다.


그 안타까운 장면이 관객 모두의 마음속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아쉬움과 동시에 아름다운 사랑의 향기로 남는다. 이러한 애틋한 스토리는 영화 곳곳의 눈 덮인 경치와 애절한 음악이 함께 어우러져 보는 이들의 마음속에서 증기기관차 소리를 내며 거친 우랄 산맥을 끝없이 질주하는 것이다.


또한 내가 영화 '겨울나그네'의 민우 (강석우분) 이었다면 어땠을까? 민우가 대학교정에서 자전거로 언덕을 내려올 때 첼로를 들고 걸으며 멈칫하며 피하던 다해 (이미숙분)이 떨어뜨린 악보와 함께 헝클어져 낙엽속에 묻힌 그녀의 사진을 발견하고는 이를 내내 간직한다. 하지만 부친 회사가 부도를 내며 삶의 질곡에 빠진 민우는 사랑하는 그녀와는 가까워지기 어려운 처지가 되어 간다. 한편 민우는 고인이 된 생모가 있던 동두천 기지촌으로 가서 지내는 사이 그의 선배 현태 (안성기분)이 다해와 가까워지며 결국 그녀와 결혼에 골인한다. 한편 삶의 나래 속에 떨어져 지내던 민우는 전과자가 되고 밀수에 가담하다 경찰에게 체포되기 직전 다해의 사진을 꺼내 보다 경찰이 가로막고 있는 차들 옆에 세워진 기름통을 향해 차를 돌진하며 삶을 마감한다.


결국 이루지 못한 애틋한 사랑과 비극적 운명 앞에서 관객들은 내내 아쉬워하며 깊은 한숨을 내어 쉰다. 내가 1986년 여름 영화관에서 그 영화를 볼 때 옆좌석의 한 여성은 계속 눈물을 훌쩍거렸던 기억이 가물거린다. 이토록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보는 이의 마음속에서 거센 바람이 되어 잔 나뭇가지를 마구 뒤흔는 모양이다.


인생은 사실 현실이란 무대에서 펼쳐지는 재미없는 일상의 조합일 뿐 로맨틱한 드라마는 아닐지 모른다. 또한 남녀 간의 사랑은 추억 속에서나 아름다운 것이지 현실적인 삶 속에서는 신선함을 계속 유지하기도 어렵다. 그래서인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란 노래는 40여년 전 대학에 입학하여 낭만을 찾던 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없이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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