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에 유행했던 말로 '무작정 上京'이 있었다. 당시에는 공업화로 인해 농촌의 인구가 대거 도시로 유입되는 상황이었다. 시골에서 상경한 사람들은 대부분 서울에만 가면 뭔가 있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짐을 꾸려 떠났는데 세상물정이라고는 모르는 어리석은 생각이었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서울역 광장에서 그러한 이들을 반갑게 또한 애타게 기다리던 이들은 다름 아닌 소매치기나 인신매매범이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에도 아메리카 버전 무작정 상경이 있었다. '黃昏(Sister Carrie)'이란 소설에는 대공황 당시 도시를 동경하여 시카고로 올라온 미모의 시골 여성 캐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녀는 여공으로 악조건의 노동환경에서 힘든 나날을 보내면서도 보다 나은 내일의 희망을 버리지 않고 일한다. 그러다 행상인을 만나 그의 情婦가 되고 그다음엔 부유한 요릿집 지배인을 만나 행상인을 버리고 새로운 情婦가 된다. 하지만 다시 뉴욕으로 가서 화려한 무대를 꿈꿔 오던 소망이 이루어져 마침내 배우로 성공한다. 그녀는 이제 여러 남자와 정을 통하며 出世하여 영화를 누리지만 제2의 정부이던 지배인은 타락하여 싸구려 하숙방에서 자살하게 되는 걸로 끝나는 스토리이다.
만일 내가 시골에서 무작정 上京을 했다면 어땠을까? 몸뚱이 하나만으로 서울행 열차에 몸을 던진 현대그룹 창업자 정주영처럼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 뭐든 가리지 않고 일했을 것이다. 그는 굳은 의지를 가지고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일하자 가게를 통으로 맡아 달라고 제안하는 이까지 나오게 된다. 이렇듯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이라도 잠재력이 있고 뭐든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책 대신 현장에서 머리가 아닌 몸으로 배워 명문대를 나온 사람 못지않은 유능한 인재가 되기도 한다.
우리 사회는 간판을 무척 중시한다. 학벌이 어느 정도 받쳐줘야 어디 가도 목에 힘을 주며 큰소리도 칠 수 있다. 학벌도 자격증도 사회생활에 도움을 주는 훌륭한 수단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고학력자들을 채용해서 동기부여와 비전제시를 하며 회사를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키워낸 사람은 하버드박사가 아닌 학교 문턱이라고는 가 본 일 없이 覇氣와 집념으로 꿈을 이뤄낸 촌놈 가출 소년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시골의 집을 가출하여 서울에 올라온 정주영은 가진 것이라곤 몸뚱이 하나만으로 공사판 노무자와 쌀집 점원 등 뭐든 가리지 않고 일하다 私債를 끌어들여 자동차 정비소를 차렸는데 화재로 인해 순식간 모든 게 잿더미로 변한다. 그는 사채업자를 찾아가서 돈을 홀랑 날렸다고 하자 貸損 경험이라고는 전무했던 사채업자는 다시 돈을 대출해 줄 테니 성공해서 반드시 갚으라고 한다. 그리해서 탄생한 회사가 현대자동차였다고 한다.
현재 대한민국은 놀랄 만큼 발전해 있고 역전에서 먹잇감을 찾아 서성대는 소매치기 조직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어디 가서 알바를 하여 최저급여만 받아도 밥은 먹고사는 나라이기에 남의 주머니에서 돈을 강탈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더불어 힘들던 시절 가진 것 없이 맨몸 하나만으로 도전하는 覇氣도 함께 사라진 듯하다. 무작정 상경이 아니라도 원대한 도전정신을 가지고 큰 기업을 일으켜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는 제2, 제3의 정주영이 나오길 손 모아 빌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