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살면서 늘 기쁜 일만 있는 게 아니다. 억울하고 괴롭고 슬프고 황당한 일도 많다. 마냥 즐겁기만 한 삶이란 게 있을 수 있긴 한 건가? 어둠이 있어 빛도 있고 빛이 있어 어둠도 있는 것처럼 마냥 즐거운 일만 있다면 우선 그게 즐거움인지를 아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지 모른다. 또한 사회나 조직에서는 하나의 기쁨이 있기 위해 건너편에는 그 기쁨을 낳는 희생이란 게 있기 마련이라 기쁨과 괴로움은 대개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다. 요컨대 기쁨이란 슬픔이나 괴로움과 같은 기쁨 저편의 것을 경험하면서 그 의미를 보다 정확히 알 수 있으며 또한 그런 경험을 해본 사람만이 진정한 기쁨을 누릴 자격이 있다 할 것이다.
삶 자체는 喜怒哀樂이 늘 교차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 같다. 인간은 출생할 때 가족들이 첫울음을 지켜보며 희망을 담은 총천연색 그림을 그린다. 하지만 그때부터 가시덤불을 헤쳐나가며 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다.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경쟁이 시작되고 남자는 軍복무까지 하면서 힘든 일도 이겨내며 세상을 온몸으로 부딪힌다. 그 후 사회생활 속에서 성취감 등 기쁨을 느끼지만 경쟁 속에서 괴로움도 겪고 가족친지들이 숨을 거두는 걸 보며 슬퍼도 하다 결국은 자신도 눈을 감게 되는 게 인생이다.
이렇듯 喜怒哀樂이 펼쳐지는 삶 속에서 자칫하면 반쪽인 삶을 살 수도 있다. 기쁨과 괴로움 내지 슬픔의 파도를 타고 때로는 업 때로는 다운으로 항해하는 게 인생이건만 기쁠 때도 괴로울 때도 늘 홀로인 인생이 있다. 남의 기쁨이나 슬픔에는 관심 자체를 두지 않고 줄곧 혼자의 삶을 사는 것이다. 남들이 괴로워할 때 그걸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이고 남들에게 기쁜 일이 생겼을 때 함께 기뻐하며 축하라도 해줄 때 자신도 그러한 축하나 위로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혼자가 아닌 주변과 서로 나눌 때 기쁨은 倍가 되며 슬픔도 折半으로 감소한다고 한다. 하지만 반쪽짜리 인생은 결국 고독하고 쓸쓸한 삶일 수밖에 없다.
홀로 된 삶 외에 세상에는 속과 겉이 다른 두 얼굴의 얄궂은 삶도 있다. 자신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 앞에서는 온갖 美辭麗句를 동원해 알랑방귀를 뀌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돌아서면 이내 다른 얼굴을 하며 온갖 험담까지 하고 다닌다. 또한 자신이 잘 나갈 때에는 우쭐대며 큰소리를 치다가 남들이 그럴 때는 猜忌하며 독설을 내뱉기도 한다. 그런 자들은 겉은 포장지로 가리고 속은 닫아둔다. 그러면서 남들의 반응에는 꽤 민감하다. 인생의 잣대가 자신의 소신과 철학이 아닌 남들의 이목이라 그때그때 변신도 하며 손해보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다.
나는 지금껏 육십 가까이 살며 혼자서 고독한 '반쪽짜리 인생' 혹은 하이에나와 같이 '두 얼굴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경험해 본 일이 있다. 앞으로 얼마를 더 살지 모르지만 최소한 그러한 삶의 주인공은 안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