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벌림속 品格과 空虛

by 최봉기

인간은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누구나 남 앞에서 자신의 威容을 과시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특히 갑자기 부자가 되었거나 무명이던 사람이 언론에 주목을 받아 유명해질 경우 그리 되기 쉽다. 벼는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지만 '자기 PR시대'인 지금은 품종이 변형되어 익은 벼도 고개를 빳빳하게 들곤 한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謙遜을 미덕으로 여겨왔지만 진정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일부러 움츠릴 필요는 없을 것 같기도 하다.


남들 앞에서 떠벌리더라도 內實을 갖춘 경우와 아닐 경우 그 결과는 확연이 차이가 난다. 전자가 '떠벌림속 品格'이라면 후자는 '떠벌림속 空虛'일지 모른다. 전자의 대표적 인물이라면 故人이 된 위대한 복서 '무하마드 알리'인 반면 후자는 국내의 잊혀진 복서 '金嗣王'이 아닐까 싶다. 알리는 늘 "I am the greatest!"란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었다. 1974년 당시 무적의 복서였던 '조지포먼'과의 시합 전 대다수가 포먼의 우세를 예상할 때 자신은 "8회에 KO로 눕히겠다"라고 했는데 결코 이는 허언이나 실언이 아니었으며 떠벌린 대로 정확하게 8회에 경기를 끝냈다.


시합 전 알리는 완벽한 대비를 했다. 포먼은 힘과 펀치면에서는 적수가 없었지만 모두 3회 이내에 상대를 KO 시켰다. 이때 알리가 세운 작전이 '로프 어도프(로프반동)'이었다. 로프에 기대어 체력을 아끼고 상대의 펀치는 가드를 올려 막아 초반에 상대의 체력을 뺐고 나중에 기습을 노려 승리한다는 작전이었다. 이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농구공으로 하루에 복부를 3,000회씩 내리치는 맷집 훈련을 했다는데 그 전략은 그대로 맞아 들어갔다. 힘 위주의 단조로운 공격에 의존했던 포먼은 갈수록 지쳐갔지만 알리는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 드디어 상대의 힘이 빠질 때 電光石化와 같은 펀치로 드디어 포먼을 링 위에 뉘었다. 승자는 같은 결과를 위해 다른 방법을 사용하고 패자는 다른 결과를 위해 같은 방법을 사용한다는 스포츠의 오래된 교훈이 그대로 실현되었다.


고인이 된 복서 金嗣王은 1977년 데뷔해 13승 11KO를 거두며 승승장구했다. 그는 대단한 펀치력과 맷집을 소유했으며 실컷 두들겨 맞다가도 대수롭지 않게 씩 웃고는 롱훅 한방으로 상대를 실신시키는 怪力의 소유자였다. 그는 또한 상대를 몇 회에 KO 시키겠노라 예고를 하고는 그 예고를 적중시키는 神通力까지 보였다. 복싱팬들도 이런 그를 보면 즐거웠고 그를 열광적으로 응원했다. 그의 魔力에 홀린 복싱팬들은 그의 챔피언 등극을 기정사실로 믿기도 했다.


드디어 그는 1980년 WBA페더급 세계챔피언 페드로사를 불러들여 타이틀전을 벌였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그의 왼손훅은 챔피언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허공만 갈랐다. 그토록 자신만만해하던 맷집은 "매에는 장사가 없다"는 속설을 정확히 확인시켜 주었다. 애초부터 그는 챔피언의 재목이 아니었는지는 모르지만 당시 보는 이들은 타고난 맷집과 펀치의 소유자였던 그였기에 "뭔가 보여주겠지"하고 조마조마하게 경기를 지켜보았다. 결국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상대로부터 뭇매만 맞다 급기야는 8회에 쓰러져 링 위에서 나뒹굴었다. 처절한 패배를 경험한 후 그는 19승 14KO 5패의 전적으로 은퇴하며 일순간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 후 그는 수면제를 먹고 자살하려까지 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의 진짜 비극은 의형제처럼 친하게 지내던 사람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소식이다. 삼엄하던 유신시절 나름의 실력과 뛰어난 쇼맨십을 갖춘 복싱계의 風雲兒로 이름을 날리던 유망 복서가 그리 허무하게 사라진 사실은 두고두고 아쉬움을 남긴다. 정교함과 내실을 갖추고 좀 더 진지하게 임했다면 그렇게 허망한 몰락은 없었을지 모른다.


이렇듯 남들 앞에서 떠벌리더라도 속이 차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는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있다. 한 사람은 '위대한 인물'로 기억되는 반면 다른 한 사람은 인생을 상대로 장난을 친 '망나니'가 되는 것이다. 현재 대내외적으로 혼란한 상황에서 온갖 망발과 떠벌림이 세상을 뒤흔들고 있다. 현재는 모르지만 시간이 흐르면 한쪽은 품격 또 한쪽은 공허로 양분될 것이다. 부디 '망나니'란 소리를 듣는 이들이 적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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