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크리스마스이브 때 친구들이랑 1박 2 일로지리산 천왕봉 등반을 다녀왔다. 그때 작년 11월부터 읽기 시작한 이병주의 소설 '지리산'을 배낭에 넣어가서 틈틈이 읽곤 했다. 말로만 듣던 지리산에 처음 발을 딛였던 건 15년전 함양의 '칠선계곡'이었다. 당시에 받은 느낌은 지리산은 다른 명산들과 비교하면 웅장함에서 차이가 난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언젠가는 배낭을 메고 지리산 종주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는데 드디어 2013년 9월 초 대피소를 예약하고 등반에 나선 것이다. 그 후 지리산의 빨치산 관련 책을 통해 빨치산들이 토벌대와 교전을 벌였던 임걸령, 토끼봉과 반야봉, 형제봉 등 봉우리들을 접할 때 왠지 친숙함과 생동감이 느껴졌다.
'지리산'은 故人이 된 이병주(1921~1992)가 집필을 시작하고 10년 후에야 완성한 7권의 장편소설로서 1972년 9윌부터 1978년 8월까지 '세대'에 발표되었다. '지리산'은 일제 말기부터 광복과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격동기를 배경으로 한다. 소설 '지리산'은 전통적인 지주계급으로서 신분의 제약 환경 속에서 인간미를 보이는 하영근과 이규, 소시민적 지식인으로서 무력감에 빠져서 회의주의자가 되어야 했던 권창혁과 김경주, 공산주의 이론을 신봉하면서도 당의 무모하고 획일적인 명령체계에 승복하지 못하고 갈등을 겪어야 했던 하준규, 박태영 그리고 시류에 따라 부침하는 좌익 우익 여러 인물들의 난세의 현실에 대처해 가는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집합해 놓은 작품이다.
1940년 진주중학의 병영화와 창씨개명 공포에 반발하며 어린 나이었지만 강한 민족의식을 가졌던 수재 태영은 중도 퇴학을 하고 渡日해 명문 경 도삼고에 재학 중이던 친구 이규를 만난다. 태영은 교외의 우유배달부로 취직하여 晝耕夜讀으로 공부해 몇 달 후 專檢시험에 수석합격한다. 태영은 그때 우유배달 동료 무라까와의 영향으로 좌익사상에 눈을 뜬다. 무라까와는 일본공산당 창단멤버였으나 일경을 피해 지하에 숨은 인물이다.
이규와 태영이 일본에 온 지 3년 후 1943년 일제의 징병제 공포로 한국 유학생들은 일본을 떠난다. 태영은 일본을 떠나 지리산에 은신하려 배편을 수배하는 도중 중학교 선배이자 후일 빨치산으로 전설적 이름을 남기게 되는 하준규를 만나 의기투합하며 함께 지리산에 가서 작은 공화국을 세운다. 이들은 普光黨이란 단체를 만들어 식량을 자급자족하며 무예를 익힌다. 산속 생활에서 후일 남부군 사령관으로 전설적 명성을 남긴 이현상과 허무주의적 성향을 지닌 윤창혁을 만나는데 이들은 태영과 하준규의 앞날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규는 하영근의 후원으로 그의 외동딸 하윤희와 프랑스 유학길에 오르며 중앙당 기간 요원으로 일하는 태영은 신탁통치가 민족적 과제로 떠오를 때 당중앙이 반탁에서 찬탁으로 돌아선 데 대해 반론을 제기하다 숙청된다. 윤창혁으로부터 공산당이 비인간적 독재조직으로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누누이 설교받은 바 있는 태영은 공산당에 환멸을 느낀다.
태영이 서울대학에 입학하여 독서회를 만들어 좌익이념을 익혀나가고 1946년 10월 조선공산당 주도하에 10월 항쟁이 일어나 태영의 옛 동지들은 지리산에 들어가 다시 빨치산이 된다. 당의 지령에 따라 영웅적 투쟁을 한 이들에게 태영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당 지원이 전혀 없다.
공산당의 관료성, 무책임성에 더욱 환멸을 느끼게 되나 태영은 스스로 이들의 후방지원을 담당하려 하여 교내에서 모금활동을 하려 한 결과 몇 트럭 분량의 후원물자를 수집하여 철도편으로 진주까지 물자를 수송하지만 경찰에 포착되어 실패한다.
태영은 공산당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하여 나름 연구를 시도한다. 공산당에 대해 1950년에 접어들어 몇년 전 빨치산의 물자를 배급하려던 배후인물을 꾸준히 조사하던 진주서 형사에게 덜미를 잡힌다. 태영은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며 자유의 몸이 된다. 그는 공산당의 명령으로 진주통신사의 통신원으로 파견된다. 1951년 8월 태영은 지리산에 같이 따라가겠다고 애원하던 아내 김숙자에게 자신의 아들을 낳아서 키우란 말을 남긴 채 지리산에 홀로 입산한다. 그는 충직한 당원으로서 지켜야 할 계율과 인간적 본성사이에 회의와 갈등을 겪는다.
태영은 자신의 운명을 너무나 경솔하게 공산당에 맡겨버린 무책임성을 스스로 단죄하겠다는 마음으로 최후의 빨치산이 될 것을 다짐한다. 쫓고 쫓기는 고난의 빨치산 생활이 2년 지났을 무렵 휴전협정이 조인된다. 거의 궤멸상태에 이른 빨치산들은 토벌대의 포위망이 좁혀오던 어느 날 태영은 남은 몇 명의 대원을 투항시키고 자신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1956년 프랑스유학에서 돌아온 이규는 격동의 역사를 증거 하는 지리산을 찾는다. 김숙자가 낳은 태영의 아들은 프랑스 유학을 하여 뛰어난 두뇌로 소르본느대학을 수석졸업하고 화학박사가 된다.
이상의 내용을 담은 7권의 대하소설 지리산을 두어 달간 정독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이상적인 생각에 빠진 많은 젊은이들이 '칼막스'의 자본론과 공산혁명에 심취하여 자신들의 꿈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 것을 보면서 서글프고도 착잡한 마음을 지울 길 없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추종했던 공산주의는 이론적으로 그럴듯했는지 모르지만 현실적으로는 결국 인민을 재물로 삼아 궤변만 늘어놓은 허구에 불과했다. 결국 공산주의란 체제는 말로는 인민이 주인이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권력을 쥔 당의 우두머리와 간부들이 주인행세를 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체제임이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지리산의 등장인물인 박태영과 하준규 와 같이 총명함과 리더십을 갖춘 인물이 만일 지금과 같은 세상에 태어났더라면 세상을 크게 바꿀 수 있었으리라는 깊은 아쉬움이 마음 한켠에 자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