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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봉기 Mar 04. 2022

해피엔딩의 삶을 위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기를 인간의 궁극적 목표는 행복이라고 한다. 인간이 부, 명예, 지적 능력 등을 갖추기 원하는 것도 결국은 행복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돈이 행복을 사주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돈은 있어야 행복할 수 있고 명예도 그 자체가 행복이라 할 순 없지만 있는 게 나름 의미는 있을 것이다. 또한 지적인 능력이 떨어질 경우에도 행복의 인지 및 관리 능력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로마란 제국이 멸망한 것도 결국은 참된 행복을 추구하는 데 있어 필요한 지적 능력 부족 때문일 수 있다. 그들은 먹는 쾌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식사 후 먹은 걸 게워 내고 또 먹었다고 한다. 또한 기본 생활이 해결되고 풍요롭다 보니 거대한 목욕탕까지 만들며 혼욕 등 성적으로 문란한 일을 자행했다고도 한다.


따라서 독버섯처럼 인간을 파탄으로 이끄는 그릇된 쾌락이 아닌 참된 행복에 관해 진지한 고민을 해보는 건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현재의 세상이 워낙 물질화, 세속화되어 있어 행복에 대한 제대로 된 판단을 갖는 것 자체가 혼돈스러울 수 있다. TV를 보면 사회 지도층들 중에서 도덕적 흠결이 없는 경우가 거의 없고 돈만 있으면 마치 행복도 살 수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혹여나 어떤 이는 종교를 통한 행복의 길을 모색할지 모르나 종교 자체도 놀라울 정도로 세속화되어 있어 거룩한 척할 때에 마치 성령이 임하는 듯한 느낌이 오기는 하지만 잠시일 경우가 많다. 또한 기복 신앙은 인간의 판단력을 마비시키기도 한다. 즉 결과가 좋은 건 기도의 덕분이고 잘못된 건 마귀 때문이라 단정하기 쉽다. 종교에서는 현재의 삶 이후의 삶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나 개인적으론 공자가 얘기한 "삶도 잘 모르는데 죽음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가? "라는 식 혹은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올지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식의 생각이 더욱 마음에 와닿는다.


그럼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에 다가가는 길인지 생각해 보자. 우선 자신의 존재 그 자체 또한 자유롭게 사고하는 주체로서의 자신의 존재에 대해 깊이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다음은 삶이 영원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유한한 시간 속에서 가치 있고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성서에서 보여주는 사랑의 실천은 행복한 삶을 위한 멋진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는 돈이나 명예보다 인간을 건전하고 선하게 해주는 것이 사랑이며 변질되지 않는 항구함과 평화로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 사랑은 희생과 봉사의 마음을 동반하므로 더러워질 수 있는 마음의 창을 깨끗하게 정화시켜 주리라 본다.


행복이란 것은 우리가 보내는 시간과 서있는 공간 위에서 존재한다. 따라서 행복 주변에 머무는 시간을 보내기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 우리가 보내는 시간은 크게 혼자 있는 시간과 남들과 함께하는 시간으로 구분할 수 있다. 혼자 있는 시간 동안 사람은 대개 고독을 느끼게 되지만 가끔씩은 혼자 있는 시간도 필요하다. 남들과 어울릴 때는 외롭지 않아서 좋지만 그런 시간이 길어지면 공허하기도 하고 마음이 혼란스러워지기도 한다. 이럴 땐 혼자 조용히 명상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편안한 휴식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혼자 있는 시간 동안 나는 주로 글을 쓴다. 글 쓰는 일에 몰입하면 잡념도 사라지고 시간도 잘 가며 외롭지도 않다. 사람마다 글 외에 그림, 조각, 서예, 음악이나 영화 감상, 산책, 등산, 운동 등 다양한 취미를 가진다. 이러한 혼자 하는 시간은 나이가 들수록 더 길어질 것 같다. 특히 오래 살 경우 이전에 만나던 사람들이 한 명씩 두 명씩 어디론가 사라지고 혼자 차를 마시고 대화도 하고 시간을 보낼 때 자신과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참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해피엔딩의 삶이 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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