忍耐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by 최봉기

인간은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우선 인내하며 사태를 주시하지만 결국 어떤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가령 여자가 결혼을 했는데 남자가 돈을 벌어오긴커녕 까먹기만 할 경우 여자는 마음이 불안해진다. 더군다나 돈도 못 벌면서 술만 먹고 신세 한탄만 한다면 여자의 속은 타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다 남자가 드러눕기라도 하면 自求之策으로 여자가 돈벌이에 나서기도 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가족 구성원이 모두 거리에 나앉게 되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문제 외에도 갑갑하지만 답이 없는 경우가 또 있다. 가령 아주 엄한 시어머니 밑에서 시집살이를 하는 며느리가 지긋지긋한 그 생활을 도저히 견뎌낼 자신이 없어 고민 끝에 결국 자신이 낳은 자식까지 내버려 두고 집을 뛰쳐나가는 경우이다. 여기서 자구지책이라면 남편이 전처소생 자식들을 키워줄 다른 누군가와 재혼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어렵다면 애들은 큰 집에서 큰 엄마손에서라도 자라게 해야 할 것이다.


가정이 아닌 국가라도 사태가 악화일로를 걷게 될 경우 뭔가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나라가 침몰하는 배처럼 가라앉기만 하는 경우이다. 조선이 쇠락하며 국권을 일본에게 빼앗겼을 때 처음엔 독립을 외치던 조선의 지식인들도 하나둘씩 친일의 길로 들어선다. 1918년 2.8 독립선언문을 완성했던 이광수나 1919년 기미독립선언문을 작성했던 최남선을 포함한 조선의 지식인들은 1920년 10월 청산리대첩의 승리 후 경신참변으로 조선인들이 무참히 학살되자 더 이상 버티는 건 무모하다고 생각하고 변절자가 된다. 이들 눈에는 갈수록 국력이 강해지는 일본이 머지않아 전 세계를 손에 넣을 걸로 보였고 그런 일본을 상대로 조선이 저항하며 독립을 꿈꾼다는 건 불가능한 일로 보였다.


후 수십 년이 지나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져 다윗과도 같은 조선이 골리아 일본으로부터 해방을 맞이한다. 하지만 해방은 조선의 자체적인 역량으로 쟁취한 것이라기보다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겁 없이 전쟁을 벌이다 패한 나머지 어부지리로 얻어진 것이었다. 그런 原罪로 인해 지금도 대한민국은 완전한 자유국가로 보기는 힘들지 모르지만 과거 일제강점기때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자유와 번영을 누린다.


상황이 악화일로로 치닿을 경우 어떤 식으로든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게 인간이다. 부부간에도 남자가 제 역할을 못할 경우 잘할 수 있도록 일단 북돋아주고 기다려줘야 하겠지만 진정 그걸로 안될 경우에는 여자가 남자가 되고 남자는 여자가 되는 대안도 나온다. 또한 여자가 아무 대책 없이 집을 나갈 경우 가정은 파탄이 난다. 하지만 홀로 된 남편은 자식을 돌봐 줄 다른 누군가를 만나 재혼이라도 해서 가정을 살려놓아야 하겠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면 자식들이 제대로 양육될 수 있는 차선책이라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의 경우도 이웃 강대국 일본에게 통치를 받게 되었을 때 끝까지 목숨을 걸고 저항했던 소수의 義人도 있었겠지만 살기 위해 일본을 추종했던 다수도 있었는데 이들을 모두 惡人으로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살기 위한 것 외에 또 다른 이유가 과연 있었을까?


가정이나 국가가 어려움에 봉착할 때에는 결국 최선이 아닌 次善策이라도 강구해야 하는 것이다. 올곧게 살아야 하는 인간이지만 극단적인 경우라면 의로움으로 殺身成人의 길을 고수할 수만은 없다. '애수(Waterloo Bridge)'란 영화에서 2차 대전에 참전한 약혼자가 전사했다는 사실을 접하고는 거리의 여자가 된 주인공이 했던 대사가 문득 떠오른다. "나는 정말 배가 고팠단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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