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국어교과서에 '禮讚'이란 말이 들어간 제목의 산문이 둘 기억난다. 하나는 '靑春'을 또 하나는 '新綠'을 소재로 하였다. 각 산문의 첫 문장이 전자는 "청춘! 이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청춘예찬)"이었고 후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두루 四時를 두고 자연이 우리에게 내리는 혜택에는 제한이 없다 (신록예찬)"이었다. 두 글을 접했던 시기가 고등학교에 막 입학했던 3~4월 무렵이라 그런지 아직까지 그 느낌은 무척 싱그럽기만 하다. 해방 전에 나온 두 글은 마치 모진 비바람에도 바위사이에서 묵묵히 서있는 소나무와도 같이 오랜 세월 동안 늘 변치 않는 모습으로 마음 한편에 자리한다. 靑春과 新綠은 인간이 향유할 수 있는 소중한 것들이지만 곧 환갑을 맞이하는 나에게 또 하나의 예찬의 대상이 있다면 그건 家庭이다.
나는 현재까지의 삶을 되돌아보며 어떨 때는 미소를, 어떨 때는 쓴웃음을 짓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삶에서 '後悔'란 단어를 떠올린 적은 없다. 고통스러웠거나 생각조차 하기 싫은 일들도 그것들이 있었기에 현재 소중하게 간직하는 아름다운 일들의 의미가 더욱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도 삶은 결코 만만한 대상이 아니다. 혹자는 우리 부모세대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우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고생을 했다고 한다. 사실 나와 같은 전후세대는 참혹한 전쟁이나 쓰라린 배고픔을 겪어보진 못했다. 그렇지만 우리라고 호강만 하며 지내온 건 아니다. 굶주림 대신 혹심한 경쟁 속에서 마음 편할 날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올 수밖에 없었던 갑갑했던 현실 또한 우리의 삶이자 운명이었다.
이렇듯 삶의 현장은 빡빡하기만 하고 삶 속에 무슨 기쁨이 존재할까 싶지만 태어나 성인이 되어 집을 떠나 혼자 밀림이나 광야와 같은 사회의 이곳저곳을 떠돌며 먹이를 찾던 인간은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나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家庭을 이루며 새의 둥지와도 같은 집에서 아기자기한 행복을 누리게 된다. 세상에서 누리는 각종 기쁨들, 다시 말해 열심히 공부해서 명문대를 입학하고 멋진 여성과 데이트를 하고 사업을 해서 돈을 버는 것과 같은 것들도 나름 삶 속에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이지만 가정이 가져다주는 형언할 수 없는 행복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암만 누추한 곳이라도 집만 한 곳은 없다"는 서양속담은 이런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된다.
과거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삶은 유한하며 인간은 언젠가는 이 세상과 이별을 한다. 따라서 사는 동안에 돈도 벌고 출세도 하고 많은 이들과 친목도 나누며 살지만 이들 모두를 합쳐도 가정이 주는 포근함을 대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같은 지붕아래서 기쁨과 고통을 나누는, 혈연으로 구성된 가족이라면 비록 학위나 거창한 직함 혹은 거액의 재산이 없더라도 서로 사랑하고 아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어렵던 시절에는 단칸방에서 여러 가족이 함께 지내면서도 화기애애함이 늘 자리하곤 했다. 하지만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에서 한 지붕 아래 사는 가정에서 바깥세상보다 못한 일들이 일어나는 걸 보면 안타까움을 떨칠 수 없다. 이럴 땐 누구라도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家庭禮讚'이란 글을 한번 올릴 생각을 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