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避暑를 떠나는 이들로 도심에는 차가 줄어 길이 덜 막힌다. 이렇듯 누구나 곤혹스러워하는 더위와의 싸움은 최소한 末伏까지는 피하기 어려울 듯싶다. 숨이 막히고 온몸이 땀으로 범벅되는 酷暑期지만 머지않아 선선해질 것이란 희망 때문에 그나마 참아내지만 계속 여름이라면 그러기도 어려울 것 같다. 반대로 온 땅이 얼어붙고 찬바람이 쌩쌩 부는 겨울이 되면 머지않아 포근한 봄이 오리라는 생각을 갖게 되니 인간은 더위나 추위를 가을이나 봄을 기다리며 견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일 入秋와 末伏이 지나도 더위가 꺾이지 않고 가을을 통째로 점령해 버린다면 어찌 될까? 三寒四溫이란 전통적인 현상도 사라진 지 오래인데 온난화로 사과의 재배지가 경상도에서 충청도로 올라오고 대구에서 사과 대신 망고가 재배되고 있다. 또한 한반도에 동남아의 스콜이 쏟아지는 판이니 더위가 꺾여 가을에는 추수를 하고 한가위 명절을 보내는 대신 삼모작이나 사모작 농사를 하게 될 날이 오지 말란 법은 없다.
이런 상상을 해보니 사계절이 뚜렷하다는 게 얼마나 큰 祝福인가 싶다. 꽁꽁 얼어붙은 대지에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오면 새싹이 파릇파릇해지고 꽃이 피며 모내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여름이 되면 바다로 떠나거나 계곡에서 푸른 잎이 무성한 나무 그늘 아래서 쉴 수 있다. 또한 여름에 흘린 땀은 머지않아 수확의 기쁨으로 이어지는 계절의 순환은 대자연이 연출하는 魔術처럼 인간을 魅了시킨다.
만일 춘하추동 대신 사계절이 여름이라면 어떻게 될까? 모르긴 해도 현재와 달리 무더위에 지치고 나태해짐에 따라 삶의 의욕과 역동성이 크게 떨어질 것 같다. 그리 보면 대한민국이 동남아나 아프리카 국가들보다 경제적으로 잘 사는 이유가 근면함과 교육열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 저간에 뚜렷한 사계절이 존재할지 모른다. 더위로 느슨해진 몸과 마음은 선선한 바람과 함께 생체리듬의 변화와 정신적인 각성을 가져오기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계절의 의미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사계절은 인간의 味覺을 통해 사는 재미를 더한다. 봄에는 겨울 동안 꽁꽁 얼어붙어 있던 대지에 생명의 숨결이 느껴지며 미나리와 쑥, 더덕 그리고 냉이와 달래 등 채소와 딸기, 복숭아와 같은 과일들이 저마다의 빛깔과 향기로 입맛을 돋워준다. 여름에는 시원한 수박이 있어 땀으로 부족한 수분을 보충하며 가을에는 사과와 배를 나눠 먹으며 가족이 오손도손 앉아 사는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계절의 변화는 인간의 感誠을 자극하며 마치 숙성된 술이나 음식에 들어 있는 효모처럼 삶을 맛깔나게 해준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먹고사는 문제에서 벗어나면 낭만과 풍류를 즐기며 이러한 것들로 인해 인간의 삶은 한 차원 상승된다. 계절의 변화 속에서 인간의 개성과 멋 그리고 자태 또한 한층 무르익고 인간들은 고상함과 품격이란 걸 갖게 된다. 이러한 감성은 음악이나 예술 또는 문학으로 승화되며 잠든 인간의 영혼을 깨워 飛上하게 한다. 낙엽이 떨어져 차곡차곡 쌓이는 모습을 보는 이들은 언젠가는 사라질 자신의 존재를 떠올리며 잠시나마 詩人이 되기도 한다. 찬바람이 불고 눈이 내릴 때엔 눈으로 희게 채색된 세상은 하늘에서 내려준 최고의 심미감으로 인간은 또한 예술가가 된다.
이렇듯 뚜렷한 사계절에는 '삶의 역동성'을 비롯해 '풍성한 味覺' 그리고 '감성을 통한 삶의 변화'라는 보석이 자리함을 깨닫게 된다. 머지않아 땡볕과 열풍이 사라지고 선선해지면 기차를 타고 한적한 곳으로 여행 가서 차를 마시고 음악을 들으며 멋진 詩 한편을 써볼까 싶다. 특히 올해는 환갑이 되는 해라서 비발디의 '四季'중 가을이나 가을의 정감을 담은 유행가를 듣게 되면 이전과 다른 전율이 느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