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六十峰에 올라오니 좌측의 낮은 봉우리와 우측의 높은 봉우리가 동시에 보인다. 40년 전 二十峰을 올라갈 때는 꽤 힘들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직 오르지 않은 七十峰이나 八十峰은 왠지 크게 두렵지 않다. 갑작스러운 기상이변이나 예기치 않은 부상만 없다면 정상에서 깃발을 꽂는 데 별 문제는 없을 것 같다. 登山을 해보면 중간중간 숨이 가쁘고 땀이 쏟아지는 깔딱 구간도 있지만 가장 힘든 때가 처음 한 시간 구간이 아닌가 싶다. 발걸음이 가장 무겁고 숨도 빨리 차오른다. 하지만 그 후로는 몸도 풀리며 걷는 게 덜 부담스럽다.
나의 삶에서 처음 한 시간과도 같던 가장 힘들었던 산행 구간은 20대였던 것 같다. 인생을 잘 모를 때였고 覇氣와 純粹함만 있으면 어떤 난관도 이겨내리라 생각했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환갑이 된 지금에서야 20대 때 하고자 했던 일들이 시시각각 삐걱거리고 꼬였던 원인의 실체가 눈에 들어온다. 한마디로 하고자 했던 일이 현실이란 굳건한 땅 위에서 구체적인 뭔가를 추구했다기보다는 즉흥적이고도 뜬구름 잡기식이었던 것이다. 당시 나는 현실주의자를 증오했던 로멘티스트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현재의 시각으로 말한다면 당시의 현실주의자는 실용주의자였고 나는 허무주의자였다는 생각도 든다.
登山을 할 때 어떤 봉우리를 어떤 코스로 올라가는가 하는 건 사람마다 다르다. 체력은 되지도 않으면서 의욕만으로 힘든 코스를 택하다 보면 불상사가 생긴다. 앞으로 나아가기도 힘이 부치고 돌아가기도 힘든 상황이 생기게 되면 조난을 당할 확률이 높다. 세상의 일도 경험이 충분치 못하다면 경험자의 조언에 귀를 기울어야 하건만 자기 고집만으로 일을 추진하다 보면 큰 낭패를 보게 된다.
이렇듯 登山은 人生과 무척 흡사하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씩의 목표를 가지고 산다. 정치나 사업 혹은 스포츠 등 진출하고자 하는 분야가 있고 각 분야별로 정치라면 대통령이나 장관, 스포츠라면 챔피언 등이 되고자 하는데 이는 등산의 정상에 해당하리라 보인다. 정상은 높을수록 올라가는 과정도 험난하기에 대단한 인내와 체력을 필요로 한다. 에베레스트산 정상으로 향하는 등반과 북한산의 백운대로 향하는 등반은 경험과 준비상태 그리고 체력과 정신력 등에서 큰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위험으로 인한 성공여부도 다르다.
등산객들 중에는 힘든 정상까지의 등반은 안중에도 없고 계곡에 발을 담그거나 단풍 구경을 하고 준비한 음식이나 술을 즐기기 위해 산을 찾는 이들도 있으며 요즈음에는 '묻지 마 관광'이란 奇行도 있다. 頂上만 보고 외길 山行을 하는 이들에게 이러한 산행은 무의미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정상을 향한 힘든 산행만 산행인 건 아니다. 삶에는 한 가지 꿈을 실현하는 데 올인하여 승리한 이들도 있지만 사실 좌절의 아픔을 억누르며 사는 凡人들이 수적으로는 훨씬 많다. 또한 어렵게 최고의 위치에 오르더라도 그 영광은 영원하지 않다. 금세 새로운 강자가 나타나 그 자리를 위협한다. 따라서 성취감만이 다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인생과 등산 공히 成就라는 화려함 못지않게 소중한 게 존재라는 본연의 의미이다. 사실 힘든 등산이란 걸 하는 건 높건 낮건 山이란 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山이란 건 인간에게 정복욕 내지 성취감을 줄 목적으로 존재하는 건 아니다. 인간의 경우도 살면서 성취할 대상이 있어 도전도 하는 것이지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뭔가를 성취하기 위한 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살며 도전할 뭔가가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인데 살면서 挑戰할 대상 하나 없었다면 그 또한 슬픈 일이다. 이는 비록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順情을 바쳐 사랑할 대상 하나 없는 청춘기와도 견줄 수 있을 것이다.
原點으로 돌아와 힘든 등산을 일부러 하는 이유는 과연 뭘까? 정복욕 혹은 성취감을 갖기 위해서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주변에 산이 있기에 등산을 한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 혹은 리프트 없이 땀 흘리며 정상까지 도달할 경우 흘린 땀만큼 더 큰 정신적 만족이 생기기도 한다. 우리의 삶에서도 간혹 등산과도 같은 힘든 일을 하는 건 성취감을 갖기 위함이라기보다 뭔가 할 일이 존재한다는 사실로 봐야 할 것이다. 게다가 요령이나 편법에 의존하기보다 땀과 정성을 마구 쏟아부을 때 만족감은 커지리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