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으면 남들 앞에서 더욱 당당할 수 있다. 이런 걸보고 '자존심'이라고도 하는데 자존심은 없어도 문제지만 너무 강해도 문제다. 자존심이 없는 이들은 남들이 자신을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어떨 땐 남들로부터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 반면 자존심이 너무 강하면 사는 데 오히려 짐이 되기도 한다.
대한민국에서 군대는 남자만 간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여자들은 병역의무 자체가 없지만 모든 나라가 다 그런 건 아니다. 이스라엘은 여자도 군복무를 한다. 그러니 대한민국 여성들은 군에 가는 남자들의 정신적인 고충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알 필요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군이란 곳에서 남자들이 배우는 게 바로 자존심을 버리는 것이다. 군이란 곳은 계급으로 상하가 구분되기에 나이든 학력이든 계급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따라서 자존감이란 걸 가질 여유도 없이 상관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생활을 하다 전역명령서를 받고 제대하는 것이다.
자존심이란 걸 속으로만 가지되 겉으로 내색하지 않는다면 사회생활이 좀 더 순조로울지 모르지만 그 정도가 되려면 도인의 경지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자존심을 하나씩 내려놓을 수 있다면 마음이 편해진다는 사실은 무척 신기하기만 하다. 지금까지 살며 가지게 된 마음의 상처를 해부해 보면 대부분 그 원인은 자존심에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자존심을 내려놓으면 상처받을 일이 적으니 마음이 편할 수밖에 없다. 자존심을 던질 수 있다면 마음속의 시기심 또한 사라질 수 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불편한 마음의 상당 부분은 시기심과 관련이 있기에 자존심을 던지면 불편한 마음 또한 사라질 것이다. 따라서 요컨대 자존심을 내려놓으면 상처받을 일도 시기심도 적어지기에 이전과는 달리 평온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럼에도 세상에는 매일같이 자존심 전쟁이 벌어진다. 개인, 단체, 국가 간 자존심 싸움으로 세상은 계속 시끄럽기만 한 것이다. 나는 그 말썽 많은 자존심으로부터 한걸음 거리를 두는 게 어떤가 하는 경험을 근래들어 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 환갑이 되었는데 공자가 말한 知天命과 耳順의 경지는 몰라도 不惑이 뭔지는 알 것 같다. 불혹은 자존심을 누그러뜨리는 데도 영향을 주는지 잘난 체 하기보다 조금 못난 체하고 남의 나은 점들을 인정해주려 하는 마음을 가진다.
혹하지 않는 경지는 또한 자신의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 좀 더 분명히 알게 하기에 나보다 나은 누군가를 보면 나 자신이 초라해지기보다는 상대가 훌륭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또한 남의 말을 경청하기보다 힘주어 내 말만 하던 때에는 돌아서면 마음이 공허하고 썰렁했다면 지금은 마음이 뭔가로 채워지는 듯한 기분이다.
이렇듯 연륜이 쌓일수록 세상의 이치 즉 순리를 알게 되기에 되지도 않는 억지를 부리는 일이 적어진다. 무엇보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원인 없는 결과는 없기에 좋은 결과는 나름의 노력이 동반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따라서 자신 아닌 상대방이 뭔가를 해냈을 때에도 그 노력을 충분히 인정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 나이가 되어 지금껏 자신을 구속했던 게 뭐였는지 생각해 보면 욕심과 독선이었음을 알게 된다. 의식주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고 하는 일이 있다면 인간은 비록 백만장자가 아니라도 나름 행복할 수 있다. 잘난 이들을 시기하거나 비하하지 않고 인정해 줄 마음을 갖게 되면 그간 나를 짓누르던 것들이 사라지고 마음이 평온해짐을 느낀다. 지금 세상 특히 정치판에는 자기 이익을 위해 억지놀음을 하는 이들이 무척 많다. 결국 이들은 언젠가는 자신들이 어리석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남을 인정하지 않는 독단적인 자존심은 자만심임을 빨리 깨닫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