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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봉기 Mar 09. 2022

생과 사

얼마 전에 전두환이 드디어 숨을 거두었다. 누구에게나 '생'의 끝에는 '사'가 있고 '사'의 전에는 '생'이 펼쳐진다. 누구나 태어나서 살다 눈을 감는데 눈 감고 나서 어디를 가는지는 잘 모르지만 간혹 죽고 나서 다시 살아나는 사람이 있다. 죽음을 체험한 사람들 말로는 사람이 생명이 정지되면 터널 같은 깜깜한 곳을 통과하고 거길 지나면 갑자기 환해지며 꽃이 피어 있는 동산 같은 곳에 가서 자기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만나기도 한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의 얘긴데 영원히 죽은 사람의 이야기는 알 수 없다. 단 교회에서는 내세란 걸 말하기도 하며 성서의 군데군데에는 내세에 대한 언급이 있고 최후의 심판이란 게 있지만 누구도 직접 경험한 내용이 아니라 유추나 추측만 할 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죽음 이후의 세계는 논외로 하고 살아서 죽기까지의 과정과 종착역을 대하는 자세에 대하여 스케치해 보는 건 어떤가 싶다. 어려서 아동기, 청소년기를 지나 스물이면 성인이 된다. 그 후 대학을 마치고 계속 공부해서 학자가 되거나 대학 졸업 후 취업을 해서 월급쟁이나 사업가가 된다. 학자나 월급쟁이나 사업가 중에서도 자기가 대략 예순까지 살면서 했던 걸 보면 A, B, C 정도로 점수를 매길 수 있을지 모른다. A라고 자부하는 사람은 자질도 뛰어나고 노력도 꾸준히 그리고 많이 한 사람일 것이고 B는 자질이 좋지만 노력이 약간 부족했거나 자질이 약간 떨어지지만 열심히 산 경우가 아닐까?  여기까지는 인간의 됨됨이를 제외하고 자신들이 했던 일의 성과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삶의 성공과 실패는 어찌 구분할 수 있을까? 어제 숨을 거둔 전두환과 얼마 전 그리된 노태우, 김종필, 김영삼, 김대중 등의 경우 보는 이마다 조금씩 차이가 날 수 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이 마지막 순간 자신의 삶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 혹은  판단이라고 기준을 정한다면 무척 흥미로울 수 있다. 왜냐하면 어떤 인간도 남을 속일 수는 있어도 자기 자신을 속일 순 없다. 또한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남 앞에서 거짓 없이 결백하게 살기는 상대적으로 더욱 어려워진다.

또한 자기가 무심코 뱉은 말 한마디에도 피해를 보는 사람이 나올 수 있기에 말 한마디 할 때도 무척 조심하게 된다. 5 공초에 천주교의 최고 어른 김수환 추기경은 말을 무척 아꼈다. 자신은 직접 "말 한마디 잘 못했다간 서울 시내에서 큰 데모가 일어나 수만 명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남기고 간 말을 놓고 보면 그 사람의 삶의 철학, 태도가 드러날지 모른다. 어떤 유명한 철학자는 "인생은 아쉬운 것이다"라고 했고 어떤 문학자는 "인생은 아름답다"라고 했다고 한다. 성서에 의하면 예수님은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 뜻인 즉 나의 주여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했다. 사흘 후에 영광스럽게 부활할 것이란 사실을 알았을지 몰랐을지 궁금해진다. 어제 전두환이 살아있을 때 뱉었다는 말은 사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막말로 ** 때까지 *소리하는 *도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 살아서 한 말은 "5.18은 시민이 총을 들었기 때문에 계엄군이 진압을 한 것이었다" 고 했다. 죽을 때 한 말은 "화장해서 뼈를 북한이 보이는 산 위에 뿌려달라"라고 했다. 광주시민이 총을 들도록 됐던 이유가 뭐였나? 당시 계엄군은 광주에 진입할 때부터 죄 없는 어린애들에게까지 총을 갈긴 걸로 나온다.


나는 마지막 순간에 무슨 말을 남길 건지 생각해둔 게 있는데 그때도 그리할 수 있으리라 본다. 어떤 재벌 총수는 "공수래공수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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