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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봉기 Mar 12. 2022

그 시절 사회상

인간이 태어나 사는 동안 희로애락이 있지만 대개 기쁘고 즐거운 경우보단 무미건조한 게 일상이고 슬프고 괴로운 일도 많다. 살면서 흔히들 넋두리처럼 하는 말이 "먹고살기 힘들다", "이 짓도 못해 먹겠다"이다. 그 이유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니 뭐니 해도 생존문제 해결이기 때문이다. 의식주가 해결될 때 친구들이랑 술 한잔도 할 수 있고 가족이 모여 세상 얘길 나누며 정겨운 시간도 보내는 것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엔 많은 사람들이 생존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아 바쁘게 살면서도 대한민국만큼 교육열이 높은 나라는 없었다.


지금이야 대한민국이 세계 10위의 경제강국이고 생활수준도 향상되었지만 우리가 어린 시절 도심지의 곳곳은 무척 험악했다. 다니던 골목마다 자칫하면 준범죄 행위가 일어나곤 하였다. 어떤 골목에는 "니 일로와 봐라, 좋은 말할 때 돈 좀 꺼내 봐라", "없는데요..", "뒤져서 나오면 10원에 한 대씩이다". 어떤 골목은 "총각 놀다 가소~" 지금은 주거지역도 아파트로 바뀌어서 으슥한 곳이 자취를 감추었지만 그 시절엔 도심지가 마치 슬럼가 같았다.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토요일도 오전 근무를 했고 일요일까지 일하러 직장에 간 경우도 있었다. 한 주간 바쁘게 살다 시름을 잊고 편안한 시간을 보냈던 때가 일요일 저녁 '웃으면 복이 와요'와 '수사반장' 방영시간이었다.


그 시절 만원 버스는 기민한 손놀림으로 양복 속 지갑을 빼내는 손 기술자(?)의 출장 근무지였다. 내가 아는 한 사람은 친척 교포 한 분이 여권이 든 손가방을 소매치기당하고 출국시간이 다가오자 난감해하였다. 당시 주변에 그쪽 분야에  손이 닿는 한 지인이 있어 연락을 했더니 그 지인은 여기저기 전화를 몇 통 해 보더니 잃어버린 손가방을 바로 찾아 오더라는 것이다. 사실인즉 소매치기 조직의 두목 몇 명에게 연락했더니 바로 문제가 쉽게 해결되었다. 그 지인이란 사람은 재주가 많은 사람으로 한 번은 명동을 지나갈 때 급히 도주하는 사람이 자기 옆으로 뛰어오고 뒤에서 "도둑이야" 하며 쫓는 사람이 보이자 발을 걸어 넘어 뜨렸는데, 넘어지던 자가 면도칼로 자신의 얼굴을 그렸다. 그냥 지나가려 했건만 그는 주먹을 날려 기절시켰고 그 공로로 훗날 청와대에 초대되어 우수 시민상과 상금을 받기도 하였다.


그 시절에는 못된 짓을 하던 노상 현금 갈취자, 소매치기, 건달 등 별별 악인들이 많았지만 지금보단 의인들도 많았다. 지금 같으면 남의 일엔 관심도 갖지 않고 청소년들의 비행을 보고도 모른 채하는 어른이 많건만 그때는 애들에게 "그러면 안돼"하고 꾸짖는 사람도 많았다.


지금은 노부모랑 같은 집에 사는 사람이 없지만 그 시절엔 부모를 모시면서 '고부간의 갈등'이란 말이 사회적 화두가 되기도 했다. 어렵게 자식들을 키워 놓으면 자식들이 한 달에 얼마씩은 부모님들께 생활비와 용돈을 드렸으니 노인들 삶이 지금보단 나았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 한 번은 담임 한분이 방과 후 퇴근을 하지 않고 애들과 함께 반에서 자습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그 반의 몇 친구들이 볶음밥을 배달시켰다. 그 담임은 배달된 식사를 보고 "너희들이 무슨 돈이 있다고.."그러자 "선생님이 퇴근도 안 하고 수고하시는데 저희가 이 정도 못하겠습니까?" 그 모습을 본 우리 담임이 종례 때 그 얘길 하며 그 학생들은 그다지 모범생들도 아니었다고 하며 자신이 큰 감동을 받았단 말을 하였다. 당시엔 S대 몇 명 보내는 게 초미의 관심사였는데 이러한 미담은 휘발유처럼  기억에서 사라지는 걸 보면 우리가 받은 교육도 속 빈 강정은 아니었는지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지금까지 잊힌 시절 기억 몇 가지를 정리해 보았다. 못 살고 못 먹던 시절일수록 배부를 때 보기 힘든 인간들 간의 끈끈한 정과 나눔의 마음은 오히려 강한 것 같다. 모르긴 하여도 이 세상 떠날 때 벌어놓은 돈이나 명예보단 살면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베풀고 나눴던 것들이 주는 기쁨이 더 크지 않을까 싶다. 그 이유가 인간은 결국 한평생 살다가 떠날 땐 가진 것을 모두 놔두고 가야 하기에 그런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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