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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봉기 Mar 15. 2022

코리안 드림

얼마 전 한글날 TV에서는 전 세계에서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가르치는 나라의 숫자가 80여 개국이나 된다고 하였다. 나는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배웠고 그 후 대학에서는 일본어를, 직장에서는 중국어를 배우기도 했다. 영어야 국제어, 즉 세계 공용어이고 제2외국어가 모국어인 나라들은 국력이 강한 나라이기에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배운다는 것은 곧 대한민국의 국력이 그만큼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아메리칸드림'이란 말에 친숙하다. 미국에 가면 맨몸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아메리칸드림이란 말은 언제부턴가 잘 들리지 않는다. 미국에서 꿈을 실현한다는 것은 인제 거의 꿈같은 얘기가 되어 버렸다. 지금 미국에 특별한 기술이나 자격증 없이 가면 막일 말고는 할 게 없다. 따라서 아메리칸드림 대신 나온 말이 코리안 드림이다. 대한민국은 1980년대 중반부터 동남아에서 온 사람들이 제조업체에서 3D 업종에 종사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그들 외에 중국 교포나 탈북자들이 유사한 일을 하고 있다. 게다가  BTS와 드라마 등 한류로 인해 대한민국은 외국인들이 살고 싶은 나라 중 하나로 급부상했다


과거 한국전쟁 후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최빈국 수준이었다. 1953년 대한민국의 1인당 GNP는 $67였고 1960년 개인총소득(GNI)이 $94였던 반면 북한은 $137, 필리핀은 $254로 각각 남한의 약 1.5배와 3배였다. 또한 1960년 대한민국의 1인당 GDP는 $1,765인 반면 미국은 $14,766로 8배나 차이가 났다. 당시 한국인들 가운데에는 기회만 될 경우 미국 이민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이민 외에도 미군과 인연을 맺어 그들이 미국에 들어갈 때 미국 땅을 밟으려 했던 사람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한 경우 미국에 들어가서는 대개 남자랑 결별, 혼자 사는 경우가 많았다. 2006년 미국 슈퍼볼에서 피츠버그 스틸러스가 우승하는데 한몫했던 미식축구 선수 '하인스 워드'의 모친도 미국에 와서 이혼하고 아들과 함께 사는 경우였다. 게다가 대한민국은 전쟁 위험도 높은 국가였다. 전쟁 발발 가능성이 워낙 높았던 70년대 중반에는 고위공무원 중에서도 미국으로 이민 가서 세탁소나 식료품 가게를 하며 살면서도 전쟁 두려움으로 떨고 있는 한국 사람들보다 자신은 안전하고 부자나라에 있다는 자부심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미국에 유학을 가서 학위를 받은 사람들 중에서도 귀국하지 않고 미국에 눌러앉는 경우도 많았다.


후 시간이 흘러 대한민국은 급속한 발전을 해 왔으며 현재 한국의 위상은 60년대, 70년대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세계에서 경제규모로 보면 10위권이며 생활 수준도 필리핀, 북한 사람들은 마치 하늘 쳐다보듯 한다. 한국 남자랑 결혼해서 이주해 온 베트남, 필리핀, 중국 여자들도 많이 있다. 대한민국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여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2002년 한일 공동으로 월드컵을 개최하며 인제는 명실상부한 선진국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현재 탈북자의 경우 대한민국에 와서 식당 등에서 일하며 월 200만 원을 벌어 100만 원을 송금할 경우 중간에서 중국 중개인이 10만 원, 북한 중개인이 10만 원을 각각 떼고 북한의 가족들에게 80만 원이 들어가는데 북한의 1인당 GNI는 $1,350으로 대한민국의 1/27에 해당되므로 월평균소득이 10만 원 정도이니 80만 원 정도면 여러 가족이 여유롭게 생활하고도 남는 정도의 돈이다.


현재 해외에서는 한국어를 할 줄만 알아도 밥은 먹고살 수 있을 거란 판단이 있기에 이토록 많은 나라들이 한국어를 가르치려 하고 있다. 과거 60~70년대에 해외에서는 대한민국이 어디 있는 나라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유럽에서 공부를 했던 교수 한분은 동료들과 국경을 넘을 때 여권의 한국이란 나라를 통관원이 알지 못해 애를 먹은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 시절 비행기 타는 일조차 예사롭지 않았을 정도로 대한민국이 초라한 나라였을 때 재미교포를 사칭해서 사기를 치는 경우도 있었고 미국에만 가면 팔자가 바뀔 거란 막연한 생각을 했던 사람도 많았다. 인제는 미국에 갔다 재미를 보지 못한 사람들은 한국에 역이민 오는 세상이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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