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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살 에는 겨울 지나면 봄. 나른한 봄 지나면 뜨거운 여름이

by 김먼지


눈이 많이 와서 걷기가 힘들고 미끄러운 날에는 직장동료들끼리 재잘거리며 살얼음판을 걷는다.

"아 대리님 전 진짜 겨울이 싫어요."

"나도. 빨리 여름이 왔으면 좋겠어."

그런데 이런 말을 하는 순간,

나는 다시 내 기억을 여름으로 가져가고는 아차차 머리에 로딩이 걸리고 만다.


푹푹 찌는 무더위 햇볕 아래 당할 길 없는 뜨거움에

숨 한번 들이마시는 것도 열이 달아오르기에,

"아 빨리 겨울되면 좋겠다."

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게 9월 초까지였다.


사람은 원래 망각의 동물이요,

현재 쥐고 있는 것보다 쥐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한 미련, 또는 갈망이 있는 존재인 것 같다.


더운 날엔 추운 겨울을,

추운 날엔 더운 여름을

그래서 겨울에는 동남아 여행을 가는 사람이 많고,

반대로 더운 여름에는 서늘한 곳으로 피서를 가는 사람이 많은 법이다.


사람이 많은 집에서 부대끼며 살아온 나는 여기저기 친척들이 주지도 않은 눈칫밥을 먹고 커서인지

북적대는 인원이 아무렇지 않다가도 모든 게 다 귀찮아질 때가 있다.

명절 연휴에도 낳아준 엄마네서 1박, 키워주신 큰어머니네서 1박, 시댁에 가서 1박씩 하고 오려면

시부모님이 없거나 해외에 사신다는 친구들이 부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100포기 넘게 김장하는 어머니가 둘(나의 친정엄마와 큰엄마)이라 김장하는 것은 고되다 아이고 되다 하고선,

주변에 김장을 아예 안해서 김치가 너무 비싸다는 친구들한테는 엄마들 김치를 내가 담그지도 않았으면서 넉살좋게 챙겨준다.

일찍 부모님을 떠나보낸 친구가 혼자 여행을 간다고 하면 부러워했던 것도 맞다.


결혼 전 내 방을 온전히 소유해본 적 없는 나기에,

어쩌면 혼자인 삶을 동경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편도 강아지도 가족도 없이 혼자 살아갈 나를 떠올리면

무섭고 쓸쓸할 것 같다.

잠깐은 자유로움에 홀가분하겠지만.


갖지 않은 것

오지 않은 것

에 얽매이기보다,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에 몰두하는 삶을

조금씩 더 배워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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