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는 시련을 응대하는 요령 : 선택

나는 "선택할 수 있다" 는 것만 진실이다.

by 김먼지


견딜 수 있냐 없냐

피할 수 있냐 없냐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있냐 없냐


결국 또 선택이다.


견딜만 하면 부딪혀서 끝장을 보고

피할 수 있으면 칼끝을 피해 숨고

나 아닌 누군가가 있다면 같이 받든지 총대를 메든지


상황은 내가 만들지 않았어도

그것이 원하는 게 아니었어도


내가 그 소용돌이 안에 와있다면

나는 선택을 하게 되어있다.

인간이 다 그러도록 신이든 자연이든 외계인이든

우릴 만들지 않았겠는가?


오늘의 내 선택은

모두가 다 빨리 때려치우라고 말할 때

오기로 석달만 더 버티다 나오겠다고 대답한 것.


남편의 경차를 소형 SUV로 바꿔주려면

나는 퇴직금과 소량의 지원금이 필요하다.


아주 차곡차곡 모아놓은 천만원이 갓넘은 주식을 깨서 보태줘도 되지만

왠지 그 주식은 나 환갑까지는 건드리고 싶지 않은 것도 사실이니까.


"그돈은 왠지 안 건드리고 싶어. 나도 열심히 모아볼게."

나도 모아본다는 남편은

반만 미덥다.

어차피 담배도 그대로 술도 그대로일거라서.


그는 어릴 적부터 오토바이 배달로 월급을 용돈으로 벌어 쓰면서 씀씀이가 큰 상태로 나에게 배송되었고

아들이 최고인 시부모님은 분수에 안맞는 걸 탐내는 아들에게 곧잘 돈을 빌려주고 돌려받으신 이력이 많다.


그래서 남편은 주머니사정이 현실적이지 못하면서 갖고 싶은 건 가지려한다.

(결핍이 없이 큰 자녀는 즉흥적이고 위험하다.

경제개념과 분수에 맞게 사는 법을 모르게 키웠다면 절대 성인인 자녀의 주머니를 자기나 은행 돈으로 채워주지 마시기를)

1.나의 친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치매에 걸리기 전에 모아주던 한달 5만원짜리 통장 600만원도,

2.다달이 다르게 들어오던 50-150만원의 내 7년간의 월급

3.쥐똥만한 만원대 주식으로 불려나간 이삼백만원어치 주식도 모두 야금야금 털어서

남편이 가게를 하는 7년동안 전부 다 가게 월세와 직원 월급과 국세 그리고 시부모님의 빌린 돈 원금을 갚는데 홀랑 다 쓰고

나는 나에게 더 인색해졌다.

그러다가 그런 나에게 기회를 주기로 한다.


남편은 하고싶은 가게를 7년이나 죽이되든 밥이되든 했으니 나에게 두번 다시는 가게를 하겠다고 못할것이고

거기다가 무역회사 다니던 나까지 도와줘야 한다는 그 알량한 꼬임에 넘어가 경단녀를 선택한 것도 나다.

7년동안 수익은 마이너스고 내 통장에 모아놓은 돈도 없이 친정엄마에게 빌린 돈과 분양권 팔아 남은 천팔백남짓한 돈에 억소리나게 은행대출로 산 구축아파트. 명의 역시 남편이고 내 통장에 돈이 있는 꼴을 못본다.


분수에 안맞게 허세부리고 사는 건 쪽팔리고 싫은데도 자꾸 큰집과 좋은 가전가구를 욕심내는 남편에게

울엄마를 닮아 입바른 소리를 다했다가는 애를 울리고 말테니 그냥 빙빙 돌려가며 이번에만 사줄게 사줄게

하다가 여기까지 왔다.(사위 안쓰러 돈보태주려는 우리엄마도 문제다)


맘같아선 분수에 안맞는 집 우기고 우겨서 쥐뿔도 없는 주제에 빚 잔뜩 지면서 우겨서 산 대가로 니가 찜통에 쪄죽더라도 3년은 레이를 타고나서 바꿔라 하고 싶지만

무더위에 또 잔뜩 익은 벌건 얼굴을 보고나면

안쓰럽다.

가여워.

남편이 귀여우면 이혼 못한댔지 언니들이.

그래 가여워도 이혼을 못하는구나.


나는 월차를 안쓰고 모으듯

안식일을 안쓰고 적립중이다.

내 안식일(원래 가게 폐업 후 1년간 쉬었어야 하지만 못쉬고 넘어간 날들)을 모으고 모아서

1년의 남편에게서의(정확하게는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난) 휴가를 꿈꾸며

그동안 가게하면서 한번도 나를 자유롭게 보내주지 않은 남편에 대한 응징을 꿈꾸며.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남편의 차를 업그레이드해주기 위해

퇴사를 미뤄본다.

그리고 그 퇴사를 미루기 위해

작은 빈도의 행복을 곳곳에 심어놓는다.

아침 출근길엔 빽다방 달달 밀크티

점심엔 풋사과 간식에 하리보 젤리.


퇴근길은 홈플러스 샐러드와 50%할인하는 마늘빵.

중복에 먹을 저녁메뉴는

치킨 안시키고 먹을

냉동실 속 먹다남은 치킨과 대패삼겹살.


내 안식일 마일리지 다 쌓이면

다 죽었어

비행기 티켓이고 배 티켓이고

끊는다.

따라오기만 해봐.

집 잘보고 있어라!복구랑!!!


오늘은 일단

무사히

집 도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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