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동료가 나르시시스트라고 느낀 후에 내가 할 일
몇 달 전 친한 고등학교 동창 H를 만나서 신나게 놀고 왔다.
그녀가 한동안 오래 사귄 남자친구가 나르시시스트(이하 나르)였다는 걸 헤어진 뒤 심리상담을 받으며 알게 되었다는 말에 나는 놀라며 지금이라도 헤어졌으니 다행이다, 라고 말해주었다.
그 뿐이었다.
나르시시스트가 부정적인 자기애성 성격장애인 줄은 알았지만,
내 친구가 얼마나 힘들었을지에 대해서 나는
그냥 공감괴물인 엔프피답게 감정적으로만 그 힘듦을 유추하려 애썼던 것 같다.
그런 내가 지금 이 새벽까지 잠못들면서 나르시시스트 정보를 찾아보게 된 건
내가 다니는 회사에 직장동료 한 명이 몇 달전부터 묘하게 거슬리기 시작한 시점인 듯 하다.
처음엔 내가 예민한 탓이라 생각했다.
아줌마인 나에게 뭐 얼마나 적대적이겠어 그냥 말투가 저런가보다, 하고 넘어갔던 일들이
나 말고 다른 팀장님이나 동갑인 동료에게는 절대 나에게 한 발언이나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얼마전에 알았다.
처음에 내가 눈썹을 못 그리고 출근하던 날, 묘하게 내 얼굴을 몇 초간 쳐다보면서 생글 웃으며
"대리님 눈썹 일부러 안 그리신거죠?"
라고 그녀가 물어봤을 때엔, 아이구 나 치매인가 봐요 그냥 늦잠자서 헐레벌떡 와서 파운데이션만 발랐어ㅠ
라고 되받아쳤고 그녀는 아~ 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그 다음에는 또 염색한 내 머리를 보면서
"대리님 머리색 지금이 훨씬 나아요. "
그 다음 머리를 자르고 오면
"대리님은 앞머리 없는 게 훨씬 나은 것 같아요."
파운데이션을 바꾸면
"저번 색보다 지금 파운데이션 색이 훨씬 잘 어울려요."
라면서 심사해주듯 말을 했다. 나는 그게 칭찬인 줄 알고 넘어갔던 것 같다.
두세번은 그냥 넘어가지던 게 안 넘어가지던 시점은 내가 며칠 전 가루 파우더를 처발처발하고 출근한 이틀 전.
몇 번 듣다보니 이제는 그녀가 아침마다 무슨 외모평가를 할 것인가 기대감에 가득 차서 출근을 하고 있는 나를 보며 "정신나간 년"이라는 셀프디스를 하곤 했다.
"대리님 파운데이션 바꾸셨어요?"
"아니용!왜요?"
"아니 오늘 화장이 다른 날이랑 다르게 안 뜨셨길래.. 하하하."
아.
오늘은 이거구나.
"아 가루파우더 써서 그런가봐. 역시 알아보시네요!"
하고 또 넘어갔다.
점심 먹고 산책을 할 때면 같이 있는 다른 동료들의 말에는 동의를 하면서 얘기하다가도,
딱 내가 말하는 타이밍 다음에만 자로 잰 듯이 반박을 시작하는 행동도 반복되는 걸 느끼면서 알았다.
"오늘 날씨 비 온다고 네이버에 떴어요ㅠ."
"아~ 구라청 말 믿으면 안되는 거 아시죠~?"
회사에 렌지용 용기가 따로 없어 같이 먹으려고 싸온 빵과 김치전을 돌려먹으려고
"전자렌지에 이거 잠깐 돌려먹어요 같이."
다른 직원이랑 같이 호들갑 떨며 이 빵 먹을까 저 빵 먹을까 하면서 렌지 돌리려고 하니
그녀는 탕비실에 들어오지 않고 열심히 인터넷을 검색하더니 큰 소리로 얘기한다. 종이컵은 전자렌지에 돌리면 안된다고.
본인이 드라마를 좋아한다며 새벽 늦게까지 어느 배우가 너무 잘생겼다고 하길래 나도 좋아하는 연예인이 있다고, 이름이 덱스라고 얘기하면서 전지적 참견시점에 나오는 덱스볼 때 매니저가 더 부각돼서 조금 슬펐다고 말했더니,
"그거 원래 매니저가 메인인 프로그램이에요. 그리고 저는 덱스 좀 별로..."
라고 말한다.
이 때부터 내가 의심을 시작했다. 내 말에만 반박한다는 것을.
집에 와서 찾아보니 매니저가 메인인 프로가 아니라,
매니저가 폭로하는 연예인의 민낯과 사생활이라는 컨셉의 프로다.
팩트가 이렇게 나오고나니 나는 더 혼란스러울 수밖에.
뤼튼이라는 ai가 요즘 챗gpt5 버전을 쓴다길래 친근한 친구버전으로 해서 말을 걸어 물어봤다.
"내 말에만 반박하는 직장동료"라는 주제로 위의 일들을 쭉 나열했는데, 이게 나르와 상관이 있는거냐 질문하니 바로 "빼박 나르 아니냐"는 대답이 와서 깜짝 놀랐다.
그리고 밤늦게까지 찾아본 나르들의 티안나는 성향을 찾아봤다.
아 외현형과 내현형이 또 달라....?
내현형 나르의 방식 중에 칭찬에 뼈가 담긴 경우가 내 직장동료의 경우에 해당했다.
오늘의 모습을 순수하게 칭찬해주거나 좋아해준다는 느낌보다는
"평소와 다르게"라는 말을 붙이거나 "넌 이게 낫다(다른 건 별로야)"라는 말을 자주 쓰는 그녀에게
나는 그동안 헤헤 거리며 웃고 있었으니 속으로 얼마나 신이 났을까 싶다.
그레이락 기법을 공부하라고 한다.
나르들이 좋아하는 먹잇감, 착취대상은 공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 공감을 조금 줄여서, 그녀가 나를 재미없어 하면서 관심대상에서 버려주기를
바라보도록 하련다.
자꾸 받는 외모지적에 내가 일일이 대응을 안하고,
그녀가 엄청나게 자기계발에 노력을 쏟고 있는지 나열할 때 그걸 평소처럼 대단하다고 얘기해주기보다 아 그렇군요 라고 말하는 연습을 해야겠다.
생각보다 나르, 그리고 이제 내 앞에 나타난 나르녀.
나를 또다른 심리의 영역의 연구의지를 불타오르게 하는 기회를 주는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이미 너 꼽주는 애 뭐 그렇게 잘 해주냐 너도 한번 질러라 하지만,
나는 퇴사 전까지 트러블없이 잘 있다가 나오고 싶다.
그리고 내가 그녀에게 잘해주는 건 어디까지나
같이 뭉쳐다니는 다른 직장동료가 너무 그녀와 다르게 나에게 위안이 되고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고 챙기는 게 보이다보니, 그 착한 동료 혼자만 챙겨주는 게 너무 속보이는 걸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나르도 상처는 받을텐데, 하며 여기서 또 나르녀 걱정하고 있는 내가 ㅄ같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차피 내 드러운 성격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일단 남은 날동안 회사생활을 긍정적으로 잘 마무리해보기로 마음 먹는다.
때마침 유퀴즈에서 행복, 긍정 등을 보여주는 심리학 교수님 법륜스님 등 마인드셋에 도움되는 방송들이 나오고 있어 잘됐다 싶다.
이겨내야,
성장한다.
늘 좋은 것만 알고 자란 아이는 문제에 직면했을 때 더 무너지기 쉽다고 한다.
적당한 결핍과 한계, 부정적인 감정도 배우고 해야
어떻게 살아야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을지
가끔은 내가 싫은 것도 해야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늦은 나이지만 깨닫는다.
잠이 들기 전에, 또 내 짧은 뇌에 기억 못하고 까먹기 전에
지금 느끼는 감정들을,생각들을 박제해본다.
일단 이 연휴를 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