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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애는 원래 있는걸까?

배꼽인사를 하는 아이 : 감사를 표현하는 법

by 김먼지


한달 전 빕스에서 와플 반죽을 올려 먹을 생각에

매우 신이 나 있었다.


6살됐으려나? 이제 말을 천천히 잘하는 귀여운 꼬마가

아빠랑 내 옆에 서서 와플을 찾는다.

"형준이 이거 먹고 싶어?"

"네!"

빵들처럼 형체가 보이지 않고 큰 기계만 보이니 어리둥절한 듯 보이는 꼬마는 아빠와 서서 말이 없다.


"와플 먹으러 왔구나! 이거는 내가 만들 수 이써!이걸 이렇게 눌러서 올리면 돼!"

안그러려고 해도 아이 나이가 어리면 나도 모르게 귀척(귀여운척)모드를 하고서 와플 만드는 법을 알려준 뒤 내 와플 버튼을(초록버튼 누르고 1분여 뒤에 다시 오려고) 누른 채 다른 음식을 집으러 갔다.


그런데 같이 간 직장동료가 날 애타게 찾는다.


"대리님!!어떤 애기가 대리님 찾는 거 같은데요?"

"나를요?"

가만히 들어보니 꼬마가 아빠한테 와플 알려준 분에게 인사를 하고싶어서 찾고 있다는 거다.


네.....?


아니 아직 초등학교도 입학 전인 것 같은 아가가

감사인사를

그것도 와플기계 사용법 30초 알려준 걸로

그것도 아빠가 시켜서도 아니고 아이가 자발적으로

감사인사하고 싶어서 사람을 찾아다닌다니.?


순간 우리나라 아이가 아닌걸까.

우리나라에 사는 게 맞을까. 생각까지 들었다.


내가 만난 저 나이 또래의 아이들은 보통 떼를 쓰거나 심한 장난끼가 다분한(예를 들면 이마트 무빙워크에 매달리다가 넘어질 뻔하거나, 베이커리 빵을 오만 데를 누르며 지나가거나, 카트에 타서 빽빽 소리를 지르며 장난감을 사달라 조르는)양상을 보여왔고 나 역시 그렇게 자라왔으니 말이다.


나를 찾고 있으니 얼른 가서 아이를 다시 마주 했더니

정말 공손하게 80도 고개와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다.

중간에 빠진 치아때문인지 발음이 조금 새지만

똑바로 배꼽인사를 한다.

"감사합니다."

나도 덩달아

"고맙습니다. 와플 아빠랑 맛있게 먹어요~!"

하고 돌아섰다.


자리로 가니 우리 테이블도 그 아이를 다 본 모양이다.

"애아빠가 진짜 잘 키운 것 같아요."

"그러게. 진짜 예의바르다. 저 나이에 있을 수 없는 태도야."

"얼마나 뿌듯할까요?"

"아 저런 아들 낳고싶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우리나라가 어두운 미래만 있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저런 아이들을 키워내기 위한 부모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새삼 저 아이들이 아니라

저 아이의 부모처럼 살아야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살아가는 동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이 마음을 먹게 하는 것은 결국 인류애가 아닐까.

나는 박애주의에 알러지가 있는 사람인데

이 날만큼은

그리고 그 날을 떠올리는 지금만큼은

인류가 그래도 희망이 있는 한

조금 더 지구상에 오래 존재해도 되지 않을까


신이 우주 또는 그 밖에 존재한다면

저 한 아이를 봐서라도

우리를 조금 더 살려주기를.

저 한 아이가 성인이 되어 펼칠 수 있는

무궁한 성장과 행복의 세계를

쥐어짠 게 아니라 저절로 생겨난 인류애를 통해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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