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는 제사, 닫혀지는 마음

제사상 속에 담겨진 우리 가족들의 비밀

by 김먼지


보시는 산스크리트어 dāna 를 번역한 말로,

불특정 다수에게 대가없이 베푸는 행위를 뜻한다.

특히 무주상보시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 부분은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는 자만심 없이

허공처럼 맑은 마음으로 베푸는 것을 뜻한다.


보시 중에 가장 참된 보시로 여겨지는 이유는


바로 그 베푸는 대상에게 향한 나의 마음이

탐욕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진 것을 대가없이 나누는 것,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해 베푸는 것이 아닌, 그냥 그 대상 자체에게 명복을 빌거나 평안을 기원하고, 응원하고 감사의 표현으로 베풀어내는 것.

그것만의 진짜 무주상보시일 것이다.


반면 우리들이 요즘 친족에게 로또번호를 바라면서 올리는 자손으로서의 제사는

이미 변질된 의미의 보시로 봐야 할 것이다.

애초에 제사의 불교적 의미가 고인에게 공양을 올림으로 추모와 효를 실현하고 그 공덕을 통해 내세의 복락을 기원하는 보시의 실천인 바,

그래서 가족끼리 지내는 상차림의 제사는 무주상보시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미 제사를 올리는 것 자체가 대가를 바라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가족을 , 내 가족을 위해 비는 제사보다

제 3자의, 더 넓은 범위의 불특정다수를 위해 바치는 베풂이

더 의미있고 복을 발하는 보시가 된다는 어느 선생의 말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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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신 이라고 하는 가신신앙의 신.

집안의 길흉화복을 관장한다는 성주신을 대접하기 위해 본상외에 하나더 차리는 상이 있다.


시댁 제사를 지내러 어제 저녁에 올라오는 길,

엄마가 시장에서 갓잡은 모듬회와 싱싱한 산낙지 세 마리, 초밥을 바리바리 싸주신 것을 들고 시댁에 도착해서 저녁을 푸지게 먹었다.

큰집에서 사돈댁 드리라는 대봉곶감도 보자기에 싼 채로 챙겨드리고 , 원래 우리가 가족들과 나누려고 산 건강야채즙도 나누었다.


"맨날 또 뭘 이렇게 무겁게 들고오냐."

"저희가 산 건 야채즙 뿐이에요~~."


늘 명절 순서는 나를 키워주신 큰집 - 엄마집 - 시댁 순으로 간다.


그러다보니 늘 엄마집으로 갈 때에는 큰어머니가 뭐라도 엄마 갖다주라고 챙겨주시고,

엄마는 또 시댁 간다고 빈손으로 보내기 싫어 싱싱한 회와 산낙지를 잊지 않고 몇년 째 떠서 손에 들려 보내고 있다.


오늘 제사상에 성주상에 올릴 밤과 대추를 여러개 올려 보기좋게 한 상 더 차려낸 것을 보고

시아버지가 자꾸 성주상에 올려놓은 것들을 자꾸만 빼서

본 제사상만 높이 쌓는 것을 보니 또 우리집하고는 가풍이 다르구나 싶었다.


친정에서 증조부모상까지 차리느라 넉넉하게 밥과 국 수저가 4세트에 성주상까지 더해지는 데에 비해

시댁에서는 본 제사상에도 밥과 국 한 세트, 성주상도 한 세트가 전부다.

재력의 차이로 따지면 훨씬 푸짐해야 할 시댁보다, 오히려 가난에 더 가까웠던 시골 친정의 제사상이 더 푸짐한 것은 늘 11년째 아이러니다.


시할머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지내셨던 요양병원으로 문병을 갈 때에도

나의 친정큰아버지가 보내신 박카스 두 박스도 우리 차에 다시 실으시던 분이 시아버지셨다.

"아니 아버님. 그거 저희 큰아버지가 여기 병원 분들 다 같이 나눠드리라고 많이 주신건데 이걸 왜 신랑 차에 실어요~."

"야 이거 뭐하러 다 돌려. 얘네 할머니만 한두병 먹게 두고 그냥 다시 가져가. 이런 데다 돈 쓰지 말고 돈 모아.!"

나는 이런 시아버지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고, 근 10년이 지난 이 며느리는 이제 시아버지가 뭐라고 하시던 말던 내가 주고 싶은 것들은 시외할머니 댁이든, 시댁이든 다 놓고 나온다.


한번은 시외할머님이 다치셔서 영양제와 큰집에서 받아온 사과 한박스를 들고 갔는데 또 사과 두알만 빼고 다시 가져가자고 하시는 시아버지에게 나도 모르게 내 특기 입바른 소리가 넘쳐나왔다.

"아버님 진짜 인생 그렇게 인색하게 사시면 안돼요. 할머님 이제 연세가 구십 다섯인데 사시면 얼마나 사신다고 그거 영양제 1-2만원 아까운듯이 그렇게 못 사게 하세요. 윤상씨 친할머니 요양병원 계실 때 어머님이 아버님은 씻기지도 못하시던 할머니 갈 때마다 씻겨드리고 머리 빗겨드리고 다 했는데. 아버님 진짜 아무리 외할머님한테 상처받으셨다고 해도 그렇게 인색하시면 나중에 할머님 돌아가시면 후회해요.. 진짜 그러지 마세요.!"

나는 그 때 머리 끝까지 차올랐던 속말을 다 꺼내서인지 지금도 후회가 없다.

그리고 그 때 이후로 아버님이 장모님인 시외할머님께 조금이라도 더 후회없이 하시려는 모습들을 보게 되어 마음이 한결 가볍다.


그리고 오늘 아침, 제사상에서 자꾸만 성주상에 놓을 음식들을 대충 차리시는 걸 보고 있자니,

이 집 가신이 서운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괜히 과일 하나를 더 접시에 갖다놓는 날 보게 된다.


나는 제사를 싫어한다.

계집아이로 태어나 늘 남존여비사상의 끝판왕인 우리 친할머니 손에 컸기 때문에

사과는 늘 꼬다리(꼭지)에 붙은 살만은 먹었고

집안 남자어른들과 오빠들이 늘 좋은 부위를 먹고 나면

그 찌꺼기를 먹고 치우는 것만 뼈빠지게 해왔으니

제사가 좋을리가 없다.

며느리로 들어온 이 시댁에서도 원래 며느리였던 시어머니 절을 마지막에 시키시는 걸 보고

이놈의 제사 남의 집 귀한 딸들 부려먹으려고 만들었구나, 하고 집 오는 길 남편이랑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겨울 빙판길 위를 팔짱끼고 걸으시다 아버님 따라 넘어져 갈비뼈에 금이 간 시어머니가 눈에 밟혀,

뼈에 좋다는 홍화씨볶은 물과 계피차를 만들어 갔더니 또 쓸데없는 짓을 한다는 시아버지에게

"아 아버님 꺼 아니니까 아버님은 드시지 마세용~ 이건 어머님꺼에요~!"

시원하게 멘트를 쳐 주고 제사를 도왔다.

재작년에는 그 금간 갈비뼈를 움켜쥐고 시할아버님 제사상을 차리기 위해 복대를 차고 쭈그려 앉았다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 부아가 치밀어 시아버지에게 냅다 한마디를 했다.

"어머님 갈비뼈 금갔는데 제사지내는 것도 대단하신거에요."

올해는 어머님 손목이 부어올라 아대를 차고 음식을 하시는데 음식이 적고 못났고를 타박하는 시아버지를 또 그냥 지나치지 못한 나는

"아이고 아버님. 어머님 손목도 부러지기 직전인데 제사상 음식이 문제면 아버님이 직접 다시 깎으세요~ 금방 하시면 되겠네."

며느리 그거 쫓겨나면 쫓겨나고 말지, 아내를 무슨 종부리듯 하는 이 70살 시아버지가 내 남편이라면 진짜 내다버리고도 남았을거라고,

나는 남편에게 늘 말하면 남편은 막 웃는다. 엄마가 아빨 너무 사랑하는 게 문제라고.


제사를 차리는 것에만 치중해서 그 안의 것들을 잊어버려서는 안된다.


제사가 죽은 사람을 위한 행위같지만 그것은 사실 살아있는 자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하나의 모임의식이다.


왕이 나라의 흥망성쇠를 맡기며 지내는 거창한 제사의 목적이라기보다,

부모 또는 조상의 제사상 앞에 모여 형제들이 도란도란 우애를 다지고 자손들과 모여 어우렁더우렁 온기를 나누는 것이 제사의 목적이다.

그래서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이 우선이 되어야 하는 것이 제사다.


집안의 맏며느리가 이혼을 하거나 죽어서 없어지면

그집 제사가 끝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제사가 쓸데없는 겉치레에만 집중하고, 그 제사상을 함께 차린 사람들을 다독이며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배려>를 잊는 순간,

제사는 결국 가정의 파탄을 불러오는 낭비와 소진, 스트레스의 주범이 되고 만다.


우리를 지키는, 혹은 지켜주기를 바라는 존재를 위해 1년에 한두번 음식을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그 의식보다 중요한 의식의 주체인 <우리>가 그 음식을 맛보며 그 시간과 공간을 의미있게 공유하는 것.

제사의 의미를

그냥 허영과 체면치레용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없는 배려라는 지능이

이제 인간이 가진 또하나의 고유의 역치로 판단될 앞으로의 세상 속에서,

달라질 제사풍경을 얼마나 다양하게 만들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 명절 아침이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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